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 국빈 방문 이틀째인 지난 11일(현지시간) 보 반 트엉 국가주석과 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베트남은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오랜 전쟁을 치른 ‘불구대천의 원수’다. 미군 약 6만명, 베트남인 약 200만명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었다. 그런 양국이 지난 10일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외교 관계를 최상위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높였다.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미군 철수 50년 만에 처음이었다.

남중국해 영토를 둘러싸고 나날이 커지는 중국의 위협이 베트남을 미국에 눈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해 지난 6월엔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낭에 입항했다. 다낭은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호앙사군도(중국명 시사군도)와 가깝다. 베트남이 미국과 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자 미국은 대규모 투자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지원을 약속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전쟁했던 적과도 안보를 위해 힘을 합치고, 든든한 안보가 경제적 번영의 초석이 되는 국제정치의 단면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부 최전선인 폴란드에는 지난 3월 미군 영구 주둔 기지가 건설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안보가 위협받는 가운데, 약 1만명의 미군이 일시 순환 배치됐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다음 침공 대상이 우리가 될 수 있다”며 미군 영구 주둔을 강력하게 요구해 관철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과 최근 한미동맹에 준하는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방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군사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강력하게 내건 조건인데, 사우디 측은 상호방위협정이 이란이나 다른 무장 파벌들의 잠재적인 공격을 억제하는 역할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반면 필리핀은 1992년 미군을 철수시킨 후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었다. ‘미군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외국인 투자 공단을 만들면 글로벌 기업이 몰려 온다’는 구상이었지만, 안보 리스크가 커진 나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은 없었고 경제는 내리막을 탔다. 미군이 사라지자 중국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일부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필리핀 어선에 총격을 가하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필리핀 정부는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