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신현종 기자

23일 오후 1시 40분쯤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전날 밤 화재가 난 이곳에 짙은 감색 패딩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이 도착했다. 눈바람이 매우 거센 현장에 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약 15분 동안 시장 어귀에 서서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보자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와 맞이했다. 그는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그런 한 위원장에게 “어, 그래”라면서 손을 건넸고, 두 사람은 악수했다. 윤 대통령은 왼손으로 한 위원장의 오른쪽 팔도 톡톡 쳤다. 현장엔 김태흠 충남지사, 충남이 지역구인 정진석·홍문표 의원, 화재가 난 곳이 지역구(충남 보령·서천)인 장동혁 사무총장, 김형동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정희용 원내대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동석했다.

그래픽=김성규

애초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에 국회와 여의도 당사 등에서 근무하는 당 사무처 직원들을 방문·격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가 심각해 급히 일정을 바꿨다. 윤 대통령도 이날 오후 현장 방문을 하기로 결정되면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 대기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인사를 나눈 뒤 소방 관계자들이 있는 천막으로 나란히 걸어가 권혁민 충남 소방본부장의 브리핑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권 본부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넸고, 권 본부장이 답변했다. 한 위원장은 입을 꽉 다문 모습으로 윤 대통령의 한 발자국 뒤에 떨어져 보고를 들었다.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올해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인명 피해 없이 화재를 진압해 준 우리 소방관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이 입은 감색 패딩 점퍼는 미국 브랜드 ‘타미 힐피거’의 작은 로고가 가슴 쪽에 있는 겨울용 점퍼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17년 2월 ‘최순실 특검’ 수사가 공식 종료되던 날 출근길에도 같은 패딩을 입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특검팀 수사팀장이었고,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수사팀원이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이 패딩을 입고 나왔다는 얘기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나란히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현장 방문을 마치면서 한 위원장에게 “서울에 올라갈 사람들 (대통령 전용) 열차를 다 같이 타고 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자리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후 한 위원장을 비롯해 당과 정부 관계자들은 대통령 전용 열차를 탔다. 대통령실은 “눈이 많이 내려 혼잡해진 교통 상황을 고려해, 현장을 방문한 당과 정부 관계자 모두 대통령 전용 열차로 함께 상경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당 의원들과 장관들, 대통령실 수석들은 모두 열차 한 칸에 같이 탔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아 1시간가량 민생 정책 관련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이 피해 상인들과 대화하고 한 위원장은 뒤에서 지켜보는 모습. /대통령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50분쯤 서울역에 도착한 뒤 취재진에게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고 길게 나눴다”며 “대통령이나 저나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치는 민생 아니겠냐”며 “저는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4월 10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고 이 나라와 국민들이 더 잘살게 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 봉합에 힘을 싣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을 출마를 선언한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두 사람 관계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언론을 보면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 같은 사이 아닌가”라며 “오해가 잘 풀리고 총선 승리를 위해 단합하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에서 “오해는 금방 풀리고, 또 바로 국민과 당원들을 생각하면 아주 긍정적으로 잘 수습이 되고 또 봉합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