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충돌을 ‘약속대련’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충돌이 외부로 알려진 지난 1월 21일 저녁 전후 상황을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먼저 한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충돌 며칠 전부터 여권 내에서 그의 행보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위원장 영입인사인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1월 17일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을 거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 비대위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몇몇 수도권 출마 의원들이 방송을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비공개 의총서 터져나온 비토 발언

수면 아래서의 불만은 더욱 컸다. 주간조선이 만난 수도권 한 험지 예비후보는 “이 문제 때문에 선거에서 지면 정말 화가 많이 날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야권에서 주도하고 있는 영부인 리스크에 대해 한 위원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20년간 검사동일체 원칙에 익숙했던 한 위원장이 가장 난감했던 자리는 김 비대위원의 발언이 있던 다음날인 1월 18일 비공개 의원총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취재진이 물러난 뒤 이례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한 현역 의원이 한 위원장에 대한 비토 의견을 꺼내든 것이다. 이 의원이 한 위원장을 저격한 명분은 ‘공정성’이었다. 공식석상에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계양을 출마를 지지한 것이 과연 공정하냐고 따져물었다. 한동훈 위원장이 다음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뜬 상태에서 이 의원은 발언을 20분간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 위원장 본인이 ‘공정’을 앞세우며 등판했는데 공천룰은 다 정해놓고 일부 인사만 대놓고 밀어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 최종 공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당 지도부가 나서서 누군가를 띄워주는 건 해선 안 된다. 국민들 공감 또한 못 얻는다.”

이튿날 한 위원장은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놨다. 표현이 애매모호했지만, 이 사안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내외가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보면 ‘국민 눈높이’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1월 19일 저녁 연합뉴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에서 한 위원장의 입장을 반박하는 듯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미리 물품을 구입하고, 구입 과정을 사전에 녹화하는 등 치밀한 기획 아래 영부인을 불법 촬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한 사천(私薦)을, 또 다른 일각에서는 김 여사에 대한 한 위원장의 대응을 꼽는다. 종합해보면 일련의 과정들이 얽히고설키면서 한 위원장이 난처해졌고, 동시에 그의 정치력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자기 의견과 다른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검사 시절부터 그는 디테일에 약한 대신 큰 흐름을 잘 잡고, 자신의 단점인 ‘디테일’을 보완해주며 잘 따르는 후배들을 화통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신 위계가 분명했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대검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한 위원장이 보고차 총장실에 들어갔을 때 내부에서 큰소리가 외부까지 흘러나온 적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한 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조짐이 여러 군데서 포착되는 걸 대통령은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17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2024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 마포을 출마 예정인 김경률 비대위원(왼쪽)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인자 용납 않는 尹의 스타일

여권 안팎에서는 한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을 포함해 비대위를 구성할 때부터 윤 대통령이 탐탁지 않아 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전통 보수와는 궤를 달리해온 김 비대위원의 성향 자체를 문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비대위원은 대통령실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직격해버렸다. 김 여사를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마리 앙투아네트’ 사례에 비유한 데 이어 당내에서 제기하는 “몰카 공작” 발언에 대해선 “수도권 출마 의원과 대구·경북 출신 의원의 시각 차”라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친윤계와 ‘용산’으로서는 김 비대위원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 위원장의 입김 내지 묵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위원장이 취임 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는 장면도 ‘용산’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29일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에 오른 직후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표를 처음 대면했는데, 당시 백드롭 문구가 ‘김건희 특검 대통령은 수용하라’였다. ‘용산’으로서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야당 대표를 만난 한동훈의 무신경이 거슬렸다는 것이다. 결국 한 위원장에 대한 이런 불만이 누적돼 오다가 1월 21일 사퇴 요구로 터져나왔다는 것이 여권 인사들의 중론이다. 현재 대통령실 전·현직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사실상 ‘함구령’이 내려져 어떤 언급도 피하는 분위기이지만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게 만든 ‘무언가’는 분명 존재함을 대부분 시사했다. 한 전직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유가 뭔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더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충돌은 권력의 생리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권력 1인자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2인자가 충돌로 치달은 사례는 과거 정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 여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인 딜레마가 존재한다. 여권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한 위원장으로서는 지상 목표인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은 2인자로서는 숙명과도 같은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은 필연적으로 권력 누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권력 1인자의 인내를 시험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과의 충돌은 어찌 보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번 충돌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두 사람이 총선 승리라는 교집합을 찾으면서 봉합됐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약간 다른 시각에서 이것을 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야권에선 이를 ‘90도 폴더인사’로 칭하며 “굴복했다”고 비꼬았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韓이 확인한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

“총선 승리는 한 위원장에게는 지상 과제일지 모르지만, 윤 대통령에게는 1순위가 아닐 수 있다. 평소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선거에서 지더라도’라는 말이다.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선을 넘는 건 안 한단 얘기다. 본인은 총선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레임덕이나 식물정부 이런 건 생각도 안 할 것이다. 검사 시절 대통령은 항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왔다. 따라서 총선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형수’를 건든다든가, ‘나를 밟고 가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건으로 한 위원장의 존재력이 커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윤 대통령이 위계질서를 확실히 다잡은 것도 있다.”

취재를 종합해보면 여러 변수로 인해 양측의 갈등이 생각보다 빨리 불거졌고 공멸의 위기감으로 인해 교집합을 찾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 1인자의 ‘레드라인’과 2인자의 ‘마이웨이’가 명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동훈 위원장 스스로가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했다는 표현으로도 바꿀 수 있다. 우려했던 대로 그의 가능성은 권력과 각을 세울 때 분명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해 본인의 직접 사과 내지는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거론되는 선까지 진행된 것도 한 위원장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현재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언론과의 대담 형식으로 김 여사의 가방 수수 경위를 설명하고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국민 눈높이’를 언급한 이후인 1월 20~21일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긍정평가는 41.8%(‘매우 잘하고 있다’ 30.2%, ‘대체로 잘하고 있다’ 11.6%)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평가인 35.7%(‘매우 잘하고 있다’ 19.2%, ‘대체로 잘하고 있다’ 16.5%)를 훌쩍 넘어섰다. 국민의힘 지지율 35.1%보다도 높은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의 핵심지지층도 이런 가능성의 확장을 반긴다. 야권에서는 한동훈 지지 모임으로 주목받는 팬카페 ‘위드후니’를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견주기도 한다. 위드후니의 경우 문재인 정부 당시 한 위원장이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거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된 직후인 지난 2020년 7월 그를 응원하기 위해 조직됐다. 현재는 1만70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회원 숫자로 보면 정치인 팬덤으로서는 아직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온라인상 여론 형성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위드후니 측에선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갈등이 불거지기 한참 전인 올해 초부터 ‘김건희 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찬성 활동을 본격화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여사 팬클럽인 ‘건승코리아’ 운영진이 중앙당에 “위드후니 활동을 제재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제출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한동훈 팬덤의 온라인 탄원서

한 위원장 지지자들은 이번에 윤 대통령과 충돌이 빚어지자 ‘한동훈 위원장에게 힘을 모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온라인 탄원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탄원서에서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진들이 모여 한동훈 위원장 관련 논의를 한다는 등 어설픈 모략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한동훈 위원장에게 국민들의 염원과 응원이 모여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지자들은 이 온라인 탄원서에 당에 전하고 싶은 말 등도 담아 지난 1월 23일 국민의힘 중앙당에 제출했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과의 수직적 당정 관계 속에서 붕괴된 김기현 당대표 체제의 전철은 답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총선 승리에 대한 여권의 절박함과 함께 남은 시간도 한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위원장이 성공하려면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할 거고 이를 한 위원장도 잘 알 것”이라며 “국민 여론도 이제 무엇이 정치쇼이고 아닌지를 잘 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리스크는 앞으로도 한 위원장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과의 갈등이 봉합된 후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말씀드렸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줄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한 위원장이 정치로 넘어오며 했던 ‘여의도 사투리’의 전형이다. 했던 말을 계속하면 한 위원장의 신선함은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사실 한 위원장의 김경률 비대위원 지지는 다소 성급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주변 보좌진하고 사전에 충분히 토의했거나 속도 조절론을 누가 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어쨌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 위원장도 당 운영과 관련해 새로 고민하는 지점들이 생기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현재 당 안팎에선 김경률 비대위원 거취를 두고도 비대위원직 사퇴 후 서울 마포을 출마 혹은 비대위원직 유지 후 서울 마포을 출마 포기 등 여러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김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출마시키지 않으면 한 위원장이 여태까지 총선의 주요 무기처럼 앞세운 민주당의 ‘586운동권 청산’ 목소리의 힘을 잃을 수 있어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숙제는 역시 ‘김건희 리스크’ 해소일 수밖에 없다. 여권 내부에선 이번 충돌로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야권에선 이를 지속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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