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29일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삼성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거대 기업으로 글로벌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부분들이 삼성과 협력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커버그 CEO는 그러면서 파운드리 업계 세계 1위인 대만 TSMC에 대한 자사의 의존도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협력사에 대한 지나친 의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삼성과의 협력 강화 의지가 반영된 발언 아니겠느냐”고 했다. 미·중 공급망 경쟁과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으로 불안정성이 고조되면서 TSMC에 집중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메타는 작년 5월 인공지능(AI)과 동영상 처리 작업을 지원하는 자체 설계 반도체 2종을 처음 공개했는데, 이 칩은 TSMC에서 제조됐다.

이러한 발언은 윤 대통령과 저커버그 CEO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30분간 환담한 자리에서 나왔다. 저커버그 CEO는 TSMC 의존도 문제를 먼저 거론하며 ‘불안한’ ‘휘발성의’를 뜻하는 단어(volatile)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저커버그 CEO가 현재와 같이 취약성이 높은, 휘발성이 높은 시기에 대만 TSMC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이슈를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서울 인근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또 “한‧미 양국 정부 간 긴밀한 공급망 협력 체계가 구축돼 있다”며 “AI 시스템에 필수적인 메모리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달라”고 했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 27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AI·확장현실(XR) 스타트업 대표 및 개발자 등과 잇달아 만났다. 업계에선 저커버그 CEO와 이재용 회장의 만남에 대해 “(빅테크 회사 중) AI 후발 주자로 평가받는 메타와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 간 윈윈 전략을 모색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저커버그 CEO가 삼성전자의 제조 역량 등을 평가하며 ‘거대 파운드리’라고 부각한 것을 보면 이번 방한을 통해 협력 강화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저커버그 CEO는 윤 대통령을 만나 LG전자와의 협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저커버그 CEO는 “차세대 XR, 혼합현실(MR) 사업 협력에서 LG가 가지고 있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등의 기술이 메타가 주력하는 메타버스(가상공간) 구현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도 미래 먹거리인 메타버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며 “메타버스 생태계 조성을 위해 R&D(연구·개발), 인재 양성 등 메타와 협력을 희망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최근 늘어나고 있는 AI를 악용한 가짜 뉴스와 허위 선동 조작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AI를 악용한 조작·선동을 막기 위한 메타 측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저커버그 CEO는 관련 영상이 AI에 의해 생성된 것인지 정보를 제공하는 등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