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이 새 정당 강령(정강)에서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문구를 모두 삭제한 것으로 19일 나타났다.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이 핵 능력 고조 및 도발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의 북한 비핵화 원칙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당 강령에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해서 곧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미국의 양대 정당 모두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로 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핵 협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미국 조야의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시작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표결에 의해 채택된 92쪽 분량의 민주당 강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과 더불어,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이 부과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왔다”며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강령은 북한을 여섯 차례 언급하면서 “(북한 도발 등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강압에 저항하기 위해 전통적 동맹을 계속 굳혀가는 한편 지역 동반 관계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민주당은 2020년 대선 당시 정강에 있었던 북한 비핵화 목표는 포함하지 않았다. 4년 전 작성·채택된 정강은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인(longer-term)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외교 캠페인을 구축하겠다”고 했었지만, 이번엔 비핵화 표현 자체가 생략됐다. 이 때문에 워싱턴 정가 일각에선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과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을 두고 협상할 수 있다는 의미”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핵군축 협상은 핵보유국끼리 대등한 위치에서 하는 것으로,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북한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지난달 발표된 공화당 정강 또한 한반도 및 북한에 대한 언급은 물론 비핵화 언급도 하지 않았다. 2020년 대선 때 2016년 정강을 그대로 채택한 공화당은 당시 강령에서 CVID를 대북 정책 목표로 포함시켰는데 이 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북한과 재협상에 나서면서 핵 군축·동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며, 우리 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억제·단념·대화 외교라는 총체적 접근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측과 대북, 북핵 정책과 관련해서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정당의 강령에 모든 외교 정책을 싣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비핵화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11월 미국 대선에서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화당에 이어 민주당도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두 정당 모두 이를 협상을 통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미·중 대립, 러·북 밀착 등으로 대북 제재의 실효성마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핵화보다는 핵 군축 협상을 시도하는 쪽이 현실적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했을 때 한국과 일본이 자체 핵무장에 나서면서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미국 차기 행정부도 여러 측면을 고려하리라 생각한다”면서도 “비핵화 목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끊임없이 미국과 소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