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사전 입국 심사제’ 도입 추진 등 양국 교류·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사전 입국 심사제는 출국 심사 때 상대국 입국 심사를 함께 받아 도착 후 전용 출구를 이용해 편리하게 입국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양국 정부가 상대국 공항에 입국 심사관을 파견하는 사전 입국 심사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내년에 맞춰 시작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양국 간 출입국 간소화와 같은 인적 교류 증진 방안을 적극 모색해 나가자”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함께 힘을 모은다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한일 관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기시다 총리는 “양국 관계의 과실을 양국 국민이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양 정상은 ‘한일 제3국 내 재외 국민 보호 협력 각서’도 체결했다. 각서엔 제3국에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양국이 상대국 국민 철수를 지원하고, 평시에도 위기관리 절차와 관련해 훈련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세계 각지에서 불안이 이어지는데 재외 국민 보호 협력 각서는 한일 양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작년 8월 18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도 재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은 한·미·일 협력을 체계화하고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두 정상은 “북한이 러시아를 뒷배 삼아 도발을 못 하게 냉정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양 정상이 합의한 ‘사전 입국 심사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출입국 심사관을 상대국 공항에 파견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다. 이를 제도화하기로 한 건 양국 간 경제인·관광객 교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 발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작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국인 1950만명, 일본인 600만명이 한일 항공 노선을 이용했다고 한다. 재외 국민 보호 협력 각서는 작년 4월 수단 쿠데타, 10월 이스라엘 하마스 사태 발생 때 양국이 재외 국민 긴급 철수를 위해 협력한 사례를 제도화하기로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작년 8월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언급하며 한일 관계 개선이 한·미·일 협력 심화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과 관련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국제사회 전체에도 큰 이익”이라며 “통일 독트린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으로 이어지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더 밝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지속될 수 있도록 양측 모두가 전향적인 자세로 함께 노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온 선인들의 노력을 계승하여 미래를 향해 한국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가혹한 환경 아래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한 것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이날 정상 회담은 100분간 진행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총리와 배우자인 기시다 유코 여사는 만찬도 함께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책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속담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며 “한일은 이웃이기 때문에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대를 강화해 왔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와 유코 여사는 이날 K팝 엔터테인먼트사를 찾아 아이돌그룹 멤버, 연습생 등과 이야기도 나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은 이번이 12번째다.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 3월 전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해 5월 기시다 총리가 답방 차원에서 방한하면서 양국 관계는 정상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퇴임을 앞둔 기시다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며 퇴임 후에도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