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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미지 편집 노석조

추석 때 TV 뉴스를 보면 고향길에 오른 차들 장면이 나옵니다. 긴 고속도로가 차로 꽉 차 있습니다. 짜증 날 만도 한데 방송사 헬기가 지나가면 다들 차창을 내리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듭니다. 아이들 입안에는 음식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추석·설날 등 명절 하면 좋은 쪽으로든 그 반대로든 누구나 떠올리는 것들이 있지요. 그 중 하나가 ‘고속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 시간 운행으로 ‘도로가 더 넓으면 안 되나’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한편으론 이런 고속도로를 일찌감치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국내 첫 고속도로는 1968년 완공된 경인고속도로와 1970년 경부고속도로입니다. 당시 ‘재정 파탄 나는 것 아니냐’ ‘그 돈으로 차라리 보조금을 늘려라’ ‘부유층 유람로 아니냐’, ‘딴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 등 여러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미래를 내다보고 돌파를 택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은 분명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당시 반대했던 사람도 지금은 그 결정이 맞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올해 정부가 심의·의결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보니, 작년 말 기준 국유재산 중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장부가액 11조9833억원의 경부고속도로였습니다. 부동의 1위입니다. 당시 총건설비는 km당 1억씩 총 429억원이었습니다. 50여년 만에 280배의 가치 상승이 이뤄졌습니다.


미 도로도 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탄생

미국 동부 북단과 남단을 잇는 95번 주간고속도로. /구글 지도

미 워싱턴 D.C.로 연수 와서 850마일(1368㎞) 떨어진 올랜도로 차를 몰고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경부·중부·호남 등 한국의 고속도로가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달리는 미국의 이 고속도로는 어떻게 계획되고 건설됐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도 고속도로가 참 잘 돼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미국 땅은 한국보다 98배나 넓은데 차로 못 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도로가 핏줄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워싱턴 지역에서 출발해 남쪽을 향해 직선거리로만 850마일 이상 종단하는데, 95번 주간고속도로(Interstate-95 Highway)만 타고 쭉 달리면 가능했습니다.

I-95는 미 동부의 북단(메인주 캐나다 국경)에서 남단(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을 이어주는 1923마일(3096㎞)의 종단 고속도로입니다. 매사추세츠, 뉴욕,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까지 포함해 총 9주를 관통합니다.

I-95 같은 기본(Primary) 주간고속도로는 총 70개가 있고, 이를 받쳐 주는 보조(auxiliary) 주간고속도로는 수백개에 달합니다. 총 길이는 4만8440마일(7만7960㎞)로 세계 최장입니다.

미국 전역을 잇는 주간고속도로. 기본(Primary) 주간고속도로는 총 70개가 있고, 이를 받쳐 주는 보조(auxiliary) 주간고속도로는 수백개에 달한다. /구글 지도

경인·경부 등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인데요. 미국 주간고속도로는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결단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5성 장군이자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1953년 취임해 6·25전쟁 정전 협정을 마무리 짓고 그해 10월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물로 한국에 잘 알려졌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자국에선 1956년 미국의 경제와 사회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주간고속도로 체계를 구축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로의 별칭도 ‘아이젠하워 주간도로’라고 합니다.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주간고속도로의 다른 이름은 아이젠하워 고속도로다.

이런 그의 명성과 국가적 평가가 과장은 아닐까 의심도 했는데요.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미술관(NPG)에 가보고 다들 인정하는 업적이 맞는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NPG 2층 대통령 전시실에는 역대 미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짧은 업적 설명이 있었는데요. 아이젠하워 업적은 3개로 정리됐습니다. 한국(6·25)전쟁 마무리, 아칸소 흑인 학생 차별 방지를 위한 연방군 배치 결단, 그리고 주간고속도로 체계 구축입니다.

군인 출신인 그가 어떻게 이런 정책을 품게 됐는지 리서치했습니다.

페어팩스 도서관과 조지타운대 도서관을 뒤져 ‘미국의 고속도로 : 미국 역사와 문화의 도로들(The American Highway: The History and Culture of Roads in the United States), ‘미국을 건설한 도로들 : 미 주간고속도로 체계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The Roads that Built America: The Incredible Story of the U.S. Interstate System)’, 그리고 ‘아이젠하워의 리더십: 아이크가 남긴 총체적 승리 관리의 영원한 교훈(Eisenhower on Leadership: Ike’s Enduring Lessons in Total Victory Management)’ 등의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①아우토반②핵 안보③미래 투자

아이젠하워의 리더십.

아이젠하워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나치 독일과 싸웠습니다. 그는 연합군이 프랑스를 가로질러 독일로 진격하는 동안 독일군이 전쟁 전에 건설한 고속도로 시스템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회고록에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는 독일을 가로지르는 아우토반의 최상급 체계를 봤다”고 썼습니다.

그가 이끄는 연합군은 고속도로 덕을 많이 봤다고 합니다. 연합군은 아우토반을 통해 추격 병력을 빠르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의 특별 보급대인 ‘레드볼 익스프레스(Red Ball Express)’는 연합군 공군의 선제 공습으로 폭파된 철로 대신 아우토반 등 유럽의 고속도로를 적극 활용해 아군에 보급품을 빠르게 공급했습니다. 1944년 8~9월 6000대의 트럭이 24시간 내내 이동했다고 합니다.

워싱턴 D.C. 국립초상화미술관 2층 미 대통령 전시실에 걸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초상화. /노석조 기자·조지타운대 방문연구원

군사 전략가이자 지휘관이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면서 2차 세계 대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도 연방 정부가 관리하는 체계적인 주와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추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서독 방문 때 아우토반을 직접 보고 나서 한국에도 도시와 도시를 잇고 물류를 원활하게 하는 통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하지요. 이런 걸 보면 아우토반은 여러 나라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줬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는 그걸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만요.

소련 등의 핵 공격에 대한 안보적 차원에서도 고려됐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취임한 1953년 초엔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사망했습니다. 크렘린 궁에서는 권력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죠. 그런 와중에 소련은 수소 폭탄도 개발하며 미국과 핵 경쟁을 벌였고요.

아이젠하워와 그의 참모들은 핵전쟁이란 유사시 긴급한 도시별 대피 시나리오도 점검했는데, 그러려면 기존의 고속도로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아이젠하워 사령관이 경험했듯이 대규모 인원 및 물자 이동을 신속히 하려면 주요 도시마다 큰 도로가 뚫려 있어야 하고, 그 도로들이 어디로든 연결돼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1950년대 당시 수준의 도로 개보수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획기적인 인프라 구축만이 국력 증진에 동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미국과 핵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소련은 1953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실험장에서 최초의 열핵 장치인 사하로프의 슬로이카 수소폭탄 모델을 폭발시켰다. 서방에서는 이 장치를 '조(Joe)-4'라고 명명했다. 소련의 네 번째 핵폭발 실험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미국에선 핵 전쟁 대비가 최대 안보 현안으로 떠올랐다. /핵자료실(Atomic Archive)

풀 죽은 중령 때 쓴 훈련 참관 보고서가 모티브

대통령 취임 3년이 되던 1956년 6월 29일 아이젠하워는 주간고속도로 시스템(IHS) 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외에 하나 더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1919년 여름 그가 중령 때입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과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합니다. 1918년에 프랑스 파병 기회가 가까스로 생겼는데, 그해 11월 11일 전쟁이 끝나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입니다.

게다가 1919년 육군이 축소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젠하워 중령은 강등당할 위기에까지 놓였다고 합니다. 군 숙소가 부족해 아내와 갓난아이와도 같이 살 수도 없어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러다 그는 전례 없는 훈련인 미주 대륙 횡단 참관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기존 인프라를 이용해 동부 워싱턴 D.C.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까지 군용 차량으로 병력을 이동하는 새로운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참관 보고서에서 “횡단 이동로는 포장 및 비포장도로가 혼재돼 있고, 낡은 다리, 좁은 통로가 곳곳에 있어 이동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로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건의했습니다.

미 육군 군사 편찬실 자료를 보면 아이젠하워는 군 복무 가운데 가장 초라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던 중령 때 했던 참관관 때의 기억,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때 아우토반의 경험 등이 대통령이 되고서 떠올라 주간고속도로 정책에 착안하게 됐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 초상화미술관 대통령 전시실 입구 정중앙에는 직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임기를 마무리한 역대 대통령 사진만 걸어놓는 규칙이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사진은 아직 없습니다. 이제 미 대선까지 두 달도 안 남았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바이든 사진도 걸리겠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국립초상화미술관 2층 미 대통령 전시실 입구에 도널드 트럼프 초상화가 걸려있다. /노석조 기자·조지타운대 방문연구원

이번에 아이젠하워의 리더십 그리고 정치적 업적을 살펴보면서 조만간 전시될 바이든의 초상화 설명란에 대표 업적으로 무엇이 올라올지 궁금했습니다.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미술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 뉴스레터 외설 구독자님들께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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