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수목원과 마주보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근처 연못에 지난 달 말 낯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물새 왜가리입니다. 본래 여름철새로 논두렁과 하천에 주로 서식하던 왜가리가 한강과 그 지천으로 세력권을 넓히더니 이제는 주택가와 차도로 둘러싸인 연구소까지 날아왔습니다. 천적 걱정 없이 이 연못에서 노닐었던 물고기들 여럿이 왜가리 뱃속에서 최후의 몸부림을 치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독자 제공 지난 4월 27일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 부근 연못을 찾은 왜가리. 청계천이나 정릉천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는 주택가와 차도를 지나야 한다.

앞서 지난 2월~3월에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연중 최대 행사중 하나인 밤섬 가마우지똥 청소가 진행됐습니다. 총 6차례에 걸쳐 밤섬의 버드나무를 새하얗게 뒤덮은 새똥을 물대포를 이용해 제거하는 작업입니다. 강인한 생존력으로 서울 하천 생태계의 최강자로 올라선 왜가리와 민물가마우지의 위용은 ‘괴조(怪鳥)’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철새에서 텃새로 변모한 탁월한 사냥꾼

부산 다대포 인근 물가에서 왜가리 한마리가 물고기를 잡아 막 삼키려 하고 있다. 왜가리는 물고기 뿐 아니라 작은 포유동물과 새, 양서류, 파충류 등을 골고루 잡아먹는다. /김동환 기자

왜가리와 민물가마우지는 물새이자, 육식조, 그리고 철새에서 습성을 바꾼 신종 텃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러나 옅고 푸르스름한 왜가리 깃털색과 어둠침침한 민물가마우지 몸색깔만큼 대비되는 점도 적지 않습니다. 사냥터가 그렇습니다. 서울 한강을 대표하는 물새로 자리잡았지만, 왜가리가 청계천·중랑천·홍제천 등 주로 지천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반면, 민물가마우지는 대체로 한강 본류나 지천 중에서도 수심이 깊은 곳을 선호합니다. 이는 사냥습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왜가리와 민물가마우지 모두 먹성으로 따지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세부 식단은 다릅니다. 왜가리는 물고기 뿐 아니라 개구리·뱀·도마뱀·쥐, 심지어 오리 새끼까지 꿀꺽하는 육해공 뷔페식성입니다. 끈질긴 집중력으로 물가에 가만히 서 있다가, 먹거리가 포착되면 S자형으로 굽은 목을 쫙 펴서 부리 사이로 먹잇감을 꽉 움켜쥡니다. 이런 사냥을 하기에 긴 다리로 사뿐사뿐 걸어다닐 수 있게끔 수심이 얕은 논두렁이나 샛강, 개울이 제격입니다.

/포항시 경북 포항시 형산강 부근에서 가마우지가 자신의 목구멍보다 훨씬 큰 잉어를 막 잡아 삼키려 하고 있다. 가마우지는 물속으로 들어가 잠수해 대형 민물고기들을 즐겨 사냥한다.

반면 민물가마우지는 타고난 잠수사냥꾼입니다. 한번 물로 뛰어들면 5m까지 너끈히 잠수할 수 있습니다. 입수한 민물가마우지는 물속을 휘저으며 누치나 잉어 같은 큼지막한 물고기들을 낚아챈 뒤 삼켜버립니다. 민물가마우지의 몸은 깊은 수심속으로 잠수가 가능하도록 최적화돼있습니다. 그래서 물갈퀴가 달린 다리는 다른 새들보다 훨씬 뒤쪽인 엉덩이쪽에 있습니다. 이렇게 사냥하며 살기 좋은 곳은 아무래도 한강 본류쪽입니다. 삼육대 동물자원학과 정훈 교수는 “사냥할 때 가마우지의 부리는 날카로운 창처럼 기능하고 있고, 왜가리의 부리는 아주 단단한 집게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강이나 금강 세종보 등 일부 지역에서 왜가리와 민물가마우지가 함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고 있으나 사냥장소에 차이가 있어 두 새가 충돌이나 경쟁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청정의 상징에서 민폐로…공존 방안 모색해야

서울 도심 한복판 청계천 최상류에서 왜가리 한마리가 물가를 거닐며 먹잇감을 찾고 있다. /조인원 기자

왜가리는 한강과 주요 하천이 정비되기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 물맑은 시골의 논두렁과 개울에서 자주 보이던 여름 철새였습니다. 민물가마우지도 역시 중국과 러시아에서 겨울철 날아와 주로 해안가에서 겨울철을 나던 철새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두 새는 도심과 농촌 할 것 없이 골고루 서식지를 넓히면서 텃새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막강한 생존력 때문에 두 조류를 유해조수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놀라운 먹성과 그 결과물 ‘똥’ 때문이지요. 시종일관 날아다녀야 하는 새들은 소화시스템이 최대한 간편화돼있습니다. 뱃속에 많이 담고 있을수록 날아다니는데 지장이 오기 때문이지요. 포유동물처럼 대소변이 분리돼나오지 않고 한번에 찍찍 나오는 까닭입니다.

/뉴시스 지난 3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서호 인공섬에 심은 나뭇가지위에 민물가마우지 수백마리가 앉아있다. 이곳 나무들은 가마우지들의 배설물 때문에 하얗게 말라죽어가는 백화현상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이 먹는 새일수록 많이 ‘싸지르게’ 됩니다. 가마우지와 왜가리는 대표적으로 ‘잘 먹고 잘 싸는’ 새입니다. 문제는 이들은 주로 나무를 터전 삼아서 집단으로 번식·생활하기 때문에 배설도 집단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가마우지나 왜가리들이 ‘훑고 지나간’ 나무들은 배설물에 함유된 강력한 인산성분 때문에 허옇게 질리는 백화현상으로 말라죽어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특히 가마우지는 사냥터를 경기도와 강원도의 민물고기 양식장까지 넓혀가면서 어민들의 호소로 정부에서 실제 민물가마우지 피해 보상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왜가리 역시 집단 서식지와 가까운 일부 학교에서 소음과 냄새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잇따르고요. 모쪼록 이들 새들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