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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엄백호라는 장수 아세요? 저요? 창업요? 저는 엄백호가 되고 싶지 않아요”
윤수영(33) 트레바리 대표의 말입니다. 트레바리. 돈을 내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비즈니스. 어느덧 창업 7년차. 수백개의 유료 독서 클럽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한때 스타트업 대표들이 만나면, ‘트레바리’의 혁신이 화제였습니다. 독서로 돈을 버는게, 시젯말로 ‘힙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천정이란걸 모를 것 같았던 트레바리를 집어삼켰습니다. 모임 금지. 수백개의 유료 독서 클럽이 비즈니스모델이고 10~20명 정도가 모여야하는데 이게 금지랍니다. 벌써 1년 이상요.
쫌아는기자들 2호인 제가 트레바리를 인터뷰하자고 제안하자, 편집장인 1호는 “트레바리 아직 안 망했어? 그래? 대단한데.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라고 합니다. “트레바리가 유니콘이 된다면, 그 수식어는 ‘팬데믹에도 버틴 유니콘’이 될꺼야”라는 혼잣말도요.
참, 엄백호요? 창업 꿈을 묻는 질문에 대한 윤 대표의 답으로 등장합니다.
“트레바리의 비즈니스모델이라는게요. ‘나는 트레바리에서 똑똑한 사람들과 만난다’는 허영과 허세도 좀 있는 것 같은데요'(쫌아는 기자들 2호)
“그게 왜 문제인가요?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트레바리에 들어오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읽고, 쓰고, 대화하면서 친해지면 덜 편협해지고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것. 멋있지 않나요. 읽고, 쓰고, 대화하는 사람이 멋있게 느껴지는 세상, 너무 환영합니다.” (윤수영 대표)
트레바리 모임 공간을 아지트라고 부르네요.
트레바리로 오는 길이 나만의 아지트를 가는 것 같은 기분이길 바랬죠.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비밀 모임 느낌이요. 트레바리는 수강신청처럼 본인의 일정에 맞춰, 취향이나 관심사 같은 클럽에 등록하는 시스템이고요.
한 번 등록하면 평균 4개월 정도 클럽에 참여하세요. 보통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하고 정해진 텍스트를 읽죠. 대부분 책이지만 가끔 기사를 읽을 때도 있고, 영화를 보기도 해요.
클럽 인원은 10~20명 사이예요. 모든 클럽에는 1명씩 ‘파트너’라는 운영 담당자가 있고요. 전체 클럽의 30% 정도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클럽장이 계시죠. 클럽장을 중심으로 굴러가요. 커뮤니티가 가장 많았을 때 숫자는 400개 정도 있었어요.
모임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이기 이틀 전에 독후감을 내요. 원고지 400자 가량으로요. 제출한 사람에 한해서만 모임에 올 수 있죠. 원래는 오프라인 모임이 주였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클럽도 늘어나고 있고요. 현재는 전체 커뮤니티의 4분의 1 정도가 온라인 클럽입니다.
‘독서 클럽’을 파는 회사 트레바리, 정체성은 뭔가요.
트레바리는 업데이트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선, 지성(知性)을 팔고자 하는 회사죠. 새로운 관심사, 가치관, 취향을 공유하는 인연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팔기도 하고요. ‘업데이트’와 ‘연결’을 판다고 이야기해요.
똑같은 사람도 어떤 맥락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관계를 맺잖아요. 사실은 A와 B는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엄청난 케미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이예요. 하필이면 둘이 소개팅에서 만나요. 그러면 영영 남이 되는 거고요. 아쉽잖아요.
지성을 공유하는 연결은 맥락과 환경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거든요. 트레바리가 그 맥락과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거죠.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면서 교류할때 관계가 특별해지거든요.
누군가와 연결을 통해 업데이트가 되고, 업데이트가 있는 의미 있는 연결이요. 서로에게 자극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위로가 되는 관계. 그런 커뮤니티를 팔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토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죠.
트레바리엔 업데이트와 연결을 파는 여러 클럽이 있어요. 업데이트 포커스 클럽, 연결 포커스 클럽이 있죠. 업데이트를 원하는 분들은 자기계발 요소가 많은 클럽을 선택해요.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하는 클럽이요. 친구를 만나고 싶은 분은 연결 중심 클럽에 가고요.
사람들이 자신을 꺼내놓고 감수성을 나누는 클럽이 있어요. 영화나 음악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클럽이요.
트레바리의 장점은 많은 클럽이 있다는 점. 대학도 클수록 교수님의 다양한 수업 선택권이 있잖아요. 트레바리도 선택권이 넓죠. 여러 클럽을 다녀보다 한 군데 정착하는 분들도 있고요.
◇우리가 팔고 싶은 것, 하지만 고객들은 다른 걸 원했다, 그래도 괜찮다
왜 돈을 내면서까지 독후감을 쓰려고 오는 이용자가 있을까요.
사업모델은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은 아니고요. 제가 하고 싶어서 독서클럽을 작게 시작했고, 이런 모임을 여럿 모아보면 어떨까 해서 신사동에서 작게 시작했어요. ‘어, 되네’ 다음 스텝을 밟아볼까. 또 되네. 이런 식으로 사업이 커졌던 것이지, 시장에서 이런 니즈가 있을 줄은 몰랐죠.
재밌어서 저 좋자고 했던 일이죠. 사업도 그렇고 모든 것이 개인의 만족을 위한 수단이잖아요. 창업자와 팀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시장에서 통하는지 테스트를 해봤던 것이죠.
실제로 고객들이 구매하는 제품과 우리가 파는 제품 사이 약간의 괴리가 있지만요.
트레바리를 신청하기 전, 혹은 신청한 직후에 고객들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린 후기를 꼭 챙겨봐요. 트레바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고객들의 글도요.
공통점은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자극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일상의 변화를 주는 수단으로 트레바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꼭 책을 읽어야겠다, 인간관계를 넓히겠다’ 이런 명확한 목적이 아니고요.
괴리요? 예컨대 ‘듀오바리’ 같은 문화요?
아무래도 가장 자극적인 소재가 연애니까요. 외부에 트레바리를 하면 연애가 쉽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것은 팩트고, 인정해요.
하지만 현상을 볼 때, 자극적인 것이 실재를 왜곡할 여지가 있죠. 연애 뿐아니라, 트레바리 안에서 채용도 많이 이뤄져요. 정말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이뤄지죠.
그러니까 관계가 이뤄지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트레바리가 일부라도 해소할 수 있어요. 예컨대 외로움을 이야기할게요. 친구가 많아도 군중 속의 고독이 될 수도 있어요.
나는 정말 좋은 음악을 듣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소주 마시고 농담만 해요. 그러면 친구는 많아도 외로워요.
트레바리 음악 클럽에 오면 그 갈증이 해소되죠.
굳이 독서 클럽 안 가도... 책은 혼자 읽는 맛 아닌가요.
인터뷰 하기 직전에 헬스장에서 P.T를 받다 왔거든요. 비슷한 것 같아요. 운동을 굳이 헬스장가서 돈을 주고 할 필요는 없어요. 요새 운동 유튜브도 많고, 홈트레이닝도 가르치고요.
동네 한 바퀴를 뛰고 와도 돼죠.
저는 운동할 의지를 돈으로 사기 위해 P.T를 받아요. 전문적인 도움과 시스템을 이용하는 니즈도요.
대부분의 사람은 원하는 삶을 살기 쉬운 환경으로 자기를 던질 때, 조금더 소원 성취가 쉽거든요. 혼자 담배 조용히 끊으면 되는데 ‘지금부터 담배 끊을 거야’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처럼요. 그런 맥락이죠. 소셜 프레셔를 통해 욕구를 실현하겠다는 니즈요.
◇“코로나 끝날때까지 안 망하고 버티고요. 그게 저의 책임입니다.”
스타트업들은 요즘 다들 ‘온라인’ ‘모바일’인데, 트레바리는 유독 ‘오프라인’이죠.
오프라인이 온라인보다 민주적인 공간이예요. 온라인은 허브가 허브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이 민주적 소통의 창구’라는 희망론을 말하곤 해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닌, 주목받지 않는 일반인, 그러니까)발언권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영향력을 얻는 사례를 이야기해요.
동의하지만, 발언권 자체가 편중돼요. 인스타그램을 보세요. 팔로워 100~200명이 아니라, 수만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향력을 미치죠. 소수에게 편중되는 구조예요.
트레바리에서 온라인 클럽을 열어보면 4~5명이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하기보다 아주 영향력 있는 사람 1명의 이야기를 100명이 듣고 싶어해요. 하지만 저는 그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유튜브나 페이스북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낫게 하는지 잘 모르겠고요. 이런 인풋을 사회에 던지고 싶어요.
사업적으로는 오프라인 베이스라 매일 어려움을 느끼죠. 오프라인이다 보니 스케일을 키우기도 어렵고요.
작년에 압구정 아지트와 성수 아지트도 문을 닫았고요.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보니 제품 자체가 완성된 공산품이 아니잖아요. 고객이 마지막으로 완성을 시키는 제품이 모임이에요.
사람과 사람들이 부딪히다 보니 여러 이슈가 생기고, 그 이슈를 해결하려면 팀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고요. 가끔 ‘우리가 이 정도로 유능한 팀이고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데, 다른 쉬운 사업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낯선 사람들의 유료 모임을 주선한다, 사실 쉽지 않죠. 공짜로 친구들 소개팅 해주고도 뒷수습하느라 고생할 정도니까요.
모임의 퀄리티를 높이는 노하우도 꽤 쌓였어요.
첫번째는 클럽 운영을 돕는 파트너요. 멤버 중에 지원하면 선발하고 교육을 해요. 좋은 분을 모시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합을 맞추죠. 이 합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갈수록 파트너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어요.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노하우죠.
둘째는 트레바리의 룰. 같은 사람도 허름한 국밥집에서 소주 먹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휘황찬란한 호텔바에 가면 정숙해지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떤 사람이 트레바리에 오더라도 저희 룰과 문화, 공간이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하고 있어요.
셋째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가이드를 드려요. 클럽이 스스로 읽을 책을 고르는데요, ‘이런 책은 어때요’, ‘이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밌어요’ 같은 것들을 은근슬쩍 밀어 넣는 것이죠. 책도 추천해주고, 글도 써와야하고요.
독후감을 강제하는 것도 그런 전략적 판단인가요.
사실 세세한 가이드까지 드리는 것, 아쉬운 의사결정이었어요. 슬펐어요. 굉장히. 회사가 이렇게 타이트하게 운영하는 것은 서비스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니까요. 생각보다 고객을 수동적으로 만들었을 때, 고객이 더 만족하는 경향을 발견하는 것. 꼭 유쾌하지만는 않아요.
독후감을 써오도록 하는 이유는 인풋이 많을수록 아웃풋이 늘어나요.
회사 회의 때도 아무도 준비를 안 해오면, 좋은 아젠다라도 별 이야기 없이 끝나잖아요. 각자 준비해온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 풍성해지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가고, 다른 사람들이 피드백을 줘야 해요. 잘 되는 클럽들의 공통점이죠.
자신이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반대로 많은 것을 투입하는거죠. 그런 클럽이 잘 돼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김소영 전 대법관 같은 유명인사도 있고, 건축가,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 클럽장이 계세요. 섭외 노하우는요.
김상헌 전 대표님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계속 보내서 만나게 됐고요. 다른 클럽장은 어디서 강연을 하고 이동하는 버스에 따라 탄 다음 계속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면서 섭외를 한 경우도 있고요.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냥 궁금한 사람들한테 들이댔어요.
코로나 팬데믹에 고전할 수밖에 없는게 트레바리죠.
지난 3월 말부터 독서 모임을 4명 제한해 열고 있어요. 원래 20명씩 열리는 모임이 4명으로 줄었고, 아지트 임대료와 인건비는 그대로니 비용은 그대로고, 매출이 5분의 1토막 난 셈이죠.
재밌는 점은 저희가 롯데문화센터와 협업해서 여는 독서 클럽이 있는데, 여기서는 20명 인원을 채워서 해요. 지금 규제가 평생교육원은 4명 모임 제한에 걸리지 않거든요. 트레바리는 평생교육원으로 등록되지 않았고요.
이것도 애매한데, 저희가 학원, 친목모임, 교육의 성격 모두 다 있어요. 학원과 교육의 성격을 내세우면 4명 제한을 받지 않지만, 친목 모임이라면 제한을 받죠. 사실 강행한다면 20명을 열 수도 있지만, 문제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4명 제한을 두는 거예요.
한국은 포지티브 규제잖나요. ‘이것만 되고, 나머지는 다 안 된다’는 규제요. 그 나머지에 해당될 요소가 있어서 그렇죠. 네거티브 규제, ‘이것만 안 되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규제면 열 수도 있지만요.
팬더믹이 바꿀 세상은 오프라인의 쇠퇴, 온라인-재택 위주 아닐까요.
역사를 보면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그리고 흑사병 정도가 인류를 덮친 팬더믹으로 꼽을 수 있는데요. 드문드문 인류를 덮쳤는데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봐요. 코로나로 인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빠르게 진전됐다고 하지만,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그냥 진행되는 방향이었고 코로나는 가속했을 뿐이죠.
사람들이 인지하는 세계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봐요. 사람을 만나고 지식을 공유하는 니즈는 계속 있을 것이고요.
실제 트레바리가 오프라인 모임을 재개하고 매출도 다시 살아나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길 원했던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죠.
다만 사업적인 관점에서는 팬데믹이 계속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대비해야죠. 이걸 헷징할 BM을 고민하고 있고요. 반대로 코로나가 끝나고 트레바리가 더 잘 될 수도 있죠. ‘그래, 이런 모임을 기다렸어!’라면서요.
클럽 4개월 이용료가 29만원이죠. 코로나 전에는 수익도 많았겠네요.
아뇨. 2019년에도 적자였어요. 강남에 아지트 임대료, 그리고 공간에도 투자를 했고요. 회원들을 위해 강남 아지트에 위스키바도 열었는데 지금은 닫았고요.
오프라인 베이스다보니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스케일업에도 제한이 상당해요. 예전에는 글로벌 진출을 이야기했었는데, 지금은 ‘일단 수도권이라도 잡자’로 목표를 수정했죠. 이익을 내야죠.
일단 코로나 끝날 때까지 안 망하고 버티고요. 사람들의 업데이트와 연결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회사가 목표인데, 일단은 재무적으로 회사가 살아있어야 하니까요. 그 점은 늘 고민하고 있고, 저와 팀의 책임이기도 하고요.
◇엄백호가 되고 싶지 않다, 뻔한 스타트업 성장머신은 아니고 싶다
7년차 창업자 윤수영와 서른넷 윤수영, 삶의 목표는 같나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들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창업했다고 생각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뻔한 ‘성장머신’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투자금이 많이 들어오면 사실 사장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아무리 경영을 못 해도 5년 이상 먹고살 걱정 없는 그런 회사면 모르겠지만요. 대부분의 사업가는 성장 머신으로 일해야죠. 하지만 뭐랄까, 어느 순간 모든 회사들의 행보가 비슷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잖아요. 창업가들은 여전히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혹시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봐요.
삼국지 좋아하세요? 삼국지 팬이면 엄백호라는 장수 아시죠? (※엄백호 : 중국 후한말 군벌. 현재 쑤저우시 일대를 지배했던 장수로 오왕 손권의 형, 손책에게 패한 후 사망했다)
삼국지 팬들에게 엄백호는 무시당하는 장수거든요. 유비, 관우, 조조처럼 대단한 능력을 갖췄던 인재도 아니었고, 명성을 날렸던 것도 아니고요. 그냥 배경인물, 엑스트라 중 하나죠.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삼국지가 2세기말 배경이고, 당시 중국 인구가 5000만명쯤 됐대요. 소설과 역사 등장인물이 600~700명 정도예요. 지금 한국 역사에서 600~700명을 다룬 소설을 쓴다고 해봐요.
과연 누가 700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엄백호 정도면 코스피 상장사 대표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는 거예요(코스피 상장사 수 807개).
부와 명성을 위해 달려가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엄백호가 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고 향기나는 삶을 사는 것은 엄백호가 되기 위해 투쟁하는 삶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6세기 네덜란드에서 돈이 가장 많았던 사람, 아무도 몰라요. 우리는 렘브란트는 알아요. 심지어 렘브란트가 당시에는 탑티어 화가도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지금 고민은 34살 윤수영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삶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이야기요. 누군가에게 꼭 기억이 되지 않아도 좋지만, 제 삶이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그것이 ‘뻔한 스타트업 성장머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