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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크 교육 현장이요? 좋은 교육자가 없어요. 좋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아녜요. 한국은 통신망 잘 깔렸고, 스마트폰 보급률 높고, 배달 플랫폼까지 너무 좋은 나라죠. 그런데 테크를 가르치는 교육 인프라만큼은 뒤떨어져요.
산업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교수님들도 가르치기 어려워요. 교수님들이 학위를 따실 때는 최고의 개발자였지만, 현장은 그보다 빠르게 바뀌어서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현장에서 쓰기 어려워요. 뛰어난 한국 엔지니어들은 모두 기업에 있고, 후배 직원들에게 도제식으로 전수 되죠. 양극화가 심해지는 거예요. 이걸 해결해야 해요. 좋은 엔지니어가 배출될 수 있다면 저희가 만든 콘텐츠, 제품으로 공부 안 해도 좋아요.”
엘리스 김재원(35)과의 첫 만남은 조금 특이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엘리스의 기술을 설명해달라’는 2호의 질문에 자신의 경험과 한국 기술 교육 현장의 문제를 20분 동안 열거했습니다. 엘리스는 코딩 교육 콘텐츠, 실시간 교육과 실습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SK, LG전자, 엔씨소프트와 같은 국내 대기업, 벤처 40~50곳이 직원 교육을 위해 엘리스를 썼죠.
그런데 이런 자랑은 뒤로하고, “사업 이야기보다, 잡소리를 먼저 하고 싶다”고 합니다. 쫌아는기자들의 인터뷰를 원했던 이유도 ‘이런 이야기도 충분히 실어줄 것 같아서’라면서요.
스타트업 창업자와의 인터뷰, 창업자에게는 회사 PR이자 홍보의 기회죠. 그런데 김대표는 “기본기를 다루는 엔지니어 교육이 부족하다”, “대학 교육이 현장과 동떨어져있다”, “소프트웨어 시대는 엔지니어가 설비이자 인프라인데 아직도 인식이 안 바뀌고 있다”는 등 거창한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AMD, 엔비디아 인턴해봤더니... 모래알 같은 한국 개발자들. 훌륭한 실력과 노하우, 전수가 안 되더라
캐나다 워털루대(산업공학과)를 다니면서 한 인턴 경험을 통해 페인 포인트를 처음 접했다고요?
제가 워털루대 04학번인데 졸업할 때까지 기업 인턴을 여섯번 했어요. 애플 캐나다, AMD, 엔비디아 등에서 했죠. 놀라운 점은 17년 전 워털루대에 인턴 매칭 플랫폼이 있었다는 거예요.
워털루대에 인턴 면접만 보는 별도 건물이 있어요. 졸업한 거부 선배가 지어준 건물이죠. 인턴 매칭 사이트에 1500개 기업이 신청하고, 학생은 희망하는 기업 여러 곳을 신청해요. 그러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면접 시간을 정해주고, 건물 한 곳에서 여러 방을 돌면서 온사이트 면접을 하죠. 면접이 끝나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 1~3순위를 정하고, 자동으로 매칭돼서 그곳에서 일해요.
인턴이 끝나면 평가를 하죠. 기업이 학생을평가하는 것은 당연하고, 학생도 기업을 평가해요. 기업 문화가 어땠는지, 인턴 대우는 정당했는지, 어떤 일을 배울 수 있었는지 등이요. 지원, 면접, 평가까지 모든 기록을 디지털로 남겨서 10년이 넘은 지금도 제가 볼 수 있고요. 그때 알았죠. 교육 플랫폼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요.
여섯 군데 북미 테크 회사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점 하나 더요. 그곳에도 내로라하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있어요. 한 명씩 보면 정말 뛰어난 실력의 개발자들이에요. 그런데 모래알 같아요. 같은 마이너리티인 중국이나 인도계 엔지니어들을 똘똘 뭉쳐요. 후배에게 가르쳐주고, 승진하면 후배를 요직으로 끌어주더라고요. 인종 중심 문화가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야만 소수가 살아남을 수 있죠. 그런데 한국 엔지니어들의 역량이나 노하우는 전혀 전수되지 않더라고요. 아쉬움이 컸죠.
그러다 한국 와서는 손코딩 시험 채점을 했으니, 충격을 받았겠군요.
한국은 좋은 테크 교육 콘텐츠를 제대로 전달할 플랫폼이 없었어요. 2012년 카이스트에 석사 하러 와서 알았죠. 강의실에 학생 500명이 모여서 문제를 종이에 써서 내는 ‘손코딩 시험’을 봤으니까요. 조교들이 치킨 시켜놓고 다음날 새벽까지 채점하고요.
강의도 마찬가지에요. 조교는 학부생 눈빛만 보면 알아요. 이 강의실에 앉아있는 10명 중 3명은 이해 못 하고 일단 필기하고 있다는 걸요. 카이스트 학생들인데도요. 모르는 문제를 모두 들고 가서 교수님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요.
테크 교육의 핵심은 이탈률이에요. 이해를 못 해서 눈빛이 흔들리는 학생들요. 그 뒤로는 정말 시험을 위한 암기만 하죠. 엘리스는 A과제에서 B과제로 넘어가지 못한 이탈률을 정교하게 체크하고 예측하죠. 선제적으로 개별 학생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이탈률을 감안해서 커리큘럼에 변화를 줘요. 자동으로 과제를 채점하고, 막히면 AI 챗봇이 간단한 질문에 응답을 해줘요. 복잡한 질문은 튜터들이 붙어서 해설을 해주고요.
그래서 퇴근한 에이스 개발자들이 강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네. 엘리스의 강점은 바로 플랫폼이에요. 밤 8~9시에 퇴근한 테크 회사, 스타트업 스타 개발자들이 집에 앉아서 영상을 켜고 코딩을 가르쳐줄 수 있는 플랫폼이죠. 최신 소프트웨어 기술은 산업 현장과 더 가깝거든요.
줌이 할 수 없는 기능들을 넣었죠. 라이브로 화상 연결이 가능하고, 이미지 프로세싱을 통해 선생님의 코딩 화면을 공유하고, 코딩 뼈대도 알려주고요. 과제 실습도 인터랙션과 채점이 가능하도록요.
그리고 이걸 강사가 수정할 수 있게 오픈 플랫폼으로 만들었어요. 강사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환경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죠. 프로그래밍 언어가 발전하는 속도는 눈 깜작할 새예요. 버전 업데이트가 수시로 되는 만큼, 교육 내용도 디테일하게 바뀌어야 해요. 그래서 강사가 그때마다 강의 내용과 과제를 바꾸죠. 딱딱한 강의와 달리 쉽게 강사, 튜터와 소통할 수 있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서 강의가 업데이트 되죠.
선생님들에게 소프트웨어 툴을 제공한 거예요. 게임으로 치면 개발 엔진을 만든 셈이죠.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개발자분들이 엘리스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겠군요.
음. 냉정하게 아직은 아닙니다. 현재 60개 정도 강의가 있는데, 초기에는 넣을 콘텐츠가 부족해서 대부분 저희가 직접 만들어서 넣었죠. 지금 퇴근 후 직접 강의를 하고 계시는 현직 개발자분들은 대개 3~4년차 젊은 개발자들이죠. 스타트업에서는 개발팀장을 맡고 계신 분들도 있고요.
대신 특강을 종종 열어요. 최근 스타트업 레터에도 소개됐던 유니콘 몰로코의 전동환 CTO님이나, 네이버, 카카오, 토스 같은 회사의 중견 개발자 특강을 비정기적으로 열죠.
더 대단한 개발자들을 모셔오고 싶죠. 사실 제가 이곳저곳 ‘제발 엘리스에서 교편 잡아주세요~’라면서 빌러 다니고 있습니다. 플랫폼과 콘텐츠 둘 다 중요하거든요. 플랫폼은 뿌리고, 콘텐츠는 열매니까요. 고용노동부의 취업준비생 교육을 위탁받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출석률이 일정 수준을 넘겨야 가이드라인을 맞추고 대금을 지급받아요. 아침 10시에 접속 안 한 수강생들에게 모닝콜 돌립니다. 손 부족하면 저도 전화 돌립니다. 콘텐츠 비즈니스, 막상 해보니 상당한 근면성이 필요하더군요. 1차원적인, 뭐랄까… ‘농업적 근면성’ 같은 것요.
◇교수 아버지에게 “아빠가 뭘 알아?”라는 엔지니어 아들
아버님이 무선통신기술분야에 유명 교수님이신데, 테크 교육 현장의 문제를 이야기하신 적 있나요.
※김재원 대표의 아버지 김동인 교수는 캐나다 명문대 사이먼프레이저대학 종신교수를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성균관대 정보통신학 교수다. 1991년부터 CDMA 분야를 연구했고, 이동통신 관련 연구에선 세계적인 권위자다.
네. 만날 싸워요. 제가 주로 공격하는 입장이죠. ‘아버지는 하드웨어를 연구해서 소프트웨어는 잘 모른다. 하드웨어는 시스템과 인프라지만,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이 핵심이다. 교육 현장이 산업과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하죠. 예전엔 아버지가 ‘아직 네가 잘 몰라서…’라고 훈계하는 입장이었는데, 요새는 주로 들으시더라고요. 가끔 현장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그래?”라고 하세요.
저는 아버지처럼 좋은 교육자도 아니고, 남들에게 코딩도 엄청 못 가르치는 낙제 강사예요. 그래도 ‘좋은 엔지니어들과 좋은 제품 만들어 낼 때 쾌감’이 제일 짜릿한 개발자죠. 같은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겁고요.
엘리스 명칭은 교수님 이름, 플랫폼 아이디어는 하버드에서 얻었다고요?
네. 엘리스 이름은 지도교수였던 오혜연 교수의 미국 이름 엘리스(alice)에서 첫 스펠링만 ‘e’로 바꾼 거예요. 가상의 선생님이란 의미를 담았죠. 처음 시작도 공동 창업자들과 조교를 하면서 카이스트 내부 학부생 시험 채점용으로 만들었거든요.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는 하버드 연수 과정에서 얻었어요. 하버드에 8개월 동안 연구원 연수를 갔었거든요. 연구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학생 1500명에게 실습환경을 제공하고 피드백을 줘야하는 거예요. 그때 하버드에서 미국 스타트업 솔루션을 가져다 썼어요. 온라인 실습 프로그램이었고, 그 스타트업은 후에 미국의 대표 온라인 교육 기업 유다시티가 샀죠. 그때 경험에서 엘리스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회칼 쓰는 법도 알려주는 엘리스, 플랫폼 확장 가능성 무한대 ‘코딩, 배워야 산다’ 한국형 B2B 성장 가능성도 커
미국은 코세라, 유다시티 같은 온라인 테크 교육 비즈니스가 굉장히 활성화됐죠. 그에 비해 한국은 아직 시장이 작은 것 같은데요.
B2C가 아니라 B2B를 보면 시장이 훨씬 큽니다. 저희가 2017년 런칭 때 B2C로 접근했다가 ‘폭망(폭삭 망했다)’했거든요. 처음엔 이틀 만에 개설 과목 수강 인원이 다 찼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 사람들이 계속 배우질 않더군요. 동기부여가 안 되거든요.
그러다 ‘한국형 B2B’의 가능성을 체험했어요. SK네트웍스가 엘리스를 통해 내부 코딩 교육을 했어요. 동기 부여는 단순했죠. 대표와 임원분들이 코딩 공부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어요. 처음엔 ‘이렇게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면서 회의적으로 봤죠.
웬 걸요? 다들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기록적인 학업 성취도가 나왔고, 심지어 인사팀 직원 한 분은 데이터 사이언스에 눈을 뜨고 아예 개발자로 전직을 했어요.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동기를 만든 셈이죠.
최근 미국 코세라가 상장을 했어요. 상장보고서를 보면 B2C 성장비율은 아주 미비해요. 미래 매출은 대부분 B2B에서 나오죠. 엘리스도 ‘재계 순위 100대 기업 중 몇% 기업이 엘리스를 쓰느냐’가 성장 동력의 핵심이죠. 재계 10위 내 대기업 모두 계열사 최소한 한 곳은 저희 엘리스를 쓰고 있지만, 더 늘려야죠.
일식도 엘리스로 가르치고 있다던데, 갑자기 왜 회칼 다루는 법을?
테크 교육에 최적화 돼 있지만 엘리스를 꼭 코딩 교육에만 활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들어갈 콘텐츠는 다양해질 수 있죠. 원격 강의에 줌을 쓰지 않는 이유는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거든요. 시험 부정행위를 감시할 수도 없고, 수강자가 어디까지 수업을 들었는지, 지금 강의만 켜두고 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이런 데이터 수집이 안 되거든요. 엘리스는 전부 체크합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 80개가 엘리스로 교육하고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일식자격증 교육이고요.
대학도 카이스트 시작으로 서울대, 연세대 이렇게 확장하고 초중고로 뻗어나가고 있죠. 서울시교육청 교사 연수에도 엘리스가 쓰이고요. 저희가 만드는 콘텐츠는 코딩 교육이지만, 플랫폼은 다양한 교육을 위해 무궁무진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엘리스의 제자라고 해야할까요? 엘리스로 코딩 배운 분들, 개발 한가락하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10만명 정도가 엘리스를 통해 코딩을 공부했어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다른 회사 개발자분이 코딩을 엘리스로 공부하셨대요. 이야기해보니 연봉이 저보다 많더군요. 뿌듯했습니다. 저는 참된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지만 좋은 개발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엔지니어들에게 저희가 가르친 것이 의미 있게 쓰일 때. 그때 보람 있고, 저희가 해결하고자 했던 페인 포인트가 해결이 되고, 그래야 비즈니스도 잘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