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30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완료하겠다”고 하자 중국이 요즘 호떡 집에 불이라도 난듯한 분위기입니다.

칭화대 세계평화포럼에 참석한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은 아프간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곤란하다”며 “미군 철수로 인해 혼란이나 내전이 발생하는 건 안된다”고 했죠. 거의 ‘미군이여, 떠나지 마라’고 하소연하는 수준입니다. 입만 열면 미국의 군사 개입을 비판해왔던 중국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죠.

7월1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문제 국제 회의에 참석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미국의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카니스탄 평화협상 특별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

◇영국, 소련 이어 미국도 실패한 땅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인도, 동으로는 중국, 서로는 이란 등 여러 세력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죠.

그러다 보니, 늘 제국의 타깃이 됐습니다. 근대의 영국, 1980년대 옛 소련까지 많은 강대국 군대가 이 나라에 들어왔죠. 미국도 9·11 테러 직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제국도 정복에 성공하지 못했죠. 험준한 산악지형, 가혹한 기후 조건, 무장세력의 끈질긴 저항에 나가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탈레반 간에 내전이 본격화되면 주변 여러 국가가 피해를 볼 것입니다. 중국은 그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클 전망이에요.

◇미국이 떠넘긴 ‘골칫덩어리’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와한회랑(Wakhan Corridor)’이라는 협곡을 통해 국경선을 접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구한 불경을 싸들고 이 길로 귀국을 했다고 하죠.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 사이에 있는 이 회랑은 길이 400㎞, 해발 고도 4000m 이상의 동서로 긴 협곡지대인데, 동쪽 끝 92㎞가량이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접합니다.

탈레반 정권 시절,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라는 위구르족 독립운동 단체에 크게 시달렸죠. 신장 내 주요 도시는 물론, 중국 전역에서 200여건의 테러 활동을 벌였습니다. 2009년에는 우루무치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죠.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와한 회랑 일대(위).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이 즐비한 고원 협곡 지대이다(아래). /구글지도, 바이두

이들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일부가 미군에 잡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로 압송됐고, 나머지는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은 그 이후 위구르족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으로 ETIM 조직을 거의 고사시켰다고 해요.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면 ETIM은 부활의 기회를 맞을 수 있습니다. 환구시보가 “미국이 중국 옆에 골칫덩어리를 던져뒀다”고 분개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죠.

◇돈으로 탈레반 잡을 수 있을까

중국은 탈레반과 접촉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수하일 샤빈 탈레반 대변인은 홍콩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도 아프간 땅을 이용해 미국과 그 동맹국 등을 공격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기에는 중국도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ETIM의 아프간 내 활동을 막겠다고 올리브 가지를 내민 거죠.

또 아프간 재건사업에 투자해줄 것도 요청했습니다. 중국은 아프간 구리 광산과 석유 광구 등에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죠.

탈레반 협상 대표단이 7월18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프카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상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

중국은 겉으로는 이런 제스처를 반기고 있지만, 내심은 믿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정치적 상황이나 내전 양상에 따라 탈레반이 언제든 돌아설 것으로 보는 거죠.

중국의 고민은 이런 상황이 돼도 군사 개입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실패하는 걸 잘 봤거든요. 당분간은 재건사업 지원 등을 통해 탈레반을 돈으로 묶어두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ETIM이 활동을 재개하는 등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 파병 여부를 고민하게 되겠죠. ‘제국의 무덤’이 중국 앞에 어른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