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그룹이 결국 파산의 길로 들어선 듯합니다. 12월3일 홍콩 증시에 공시를 내 “2억6000만 달러의 사모채를 상환하지 못한다”고 했죠.
헝다그룹 본사가 있는 중국 광둥성 정부는 이날 저녁 곧바로 쉬자인(許家印) 헝다그룹 회장을 면담한 뒤, 성 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팀을 헝다그룹에 파견한다고 했습니다. 12월6일에는 쉬 회장 등 헝다그룹 고위층 3명과 외부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 ‘리스크해소위원회’도 출범시켰죠.
주요 임원들은 이탈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지시도 내려졌습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신속하게 빚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이에요.
◇3100억 달러 천문학적 부채
헝다그룹은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으로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큰 업체죠. 총 부채 규모는 3100억 달러로 웬만한 나라 연간 국내총생산(GDP) 액수보다 많습니다.
그런 만큼 헝다의 도산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보도가 적잖습니다. 부동산 시장 거품이 터지면서 중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와요.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말을 아는 전문가들은 헝다 파산 사태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중국 당국이 더 큰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여러 부작용을 각오하고 선제적으로 수술에 나선 의미가 더 강하다는 거죠.
◇대마(大馬)도 죽을 수 있다
중국 인민은행과 주택도시농촌건설부는 작년 8월 주요 부동산 기업을 불러서 ‘3가지 레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①분양 주택 선수금으로 받은 현금을 제외한 부채비율을 70% 아래로 유지할 것 ②순부채비율이 100%를 넘지 않도록 할 것 ③보유 현금을 단기 부채로 나눈 비율이 1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 것 등입니다. 더는 부채를 늘리지 말고, 이 선을 초과한 부채는 유휴 자산을 팔아 빨리 갚으라는 뜻이죠.
부동산 기업들은 토지 매입과 주택 건설에 드는 막대한 돈을 은행으로부터 조달합니다. 다 지은 주택을 팔아 번 돈으로 대출금을 갚고 남는 금액이 이윤이 되죠. 주택 시장이 활황일 때는 일이 순조롭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팔지 못한 주택이 쌓이고 그만큼 부채가 누적됩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죠.
중국 부동산 기업 대부분이 3가지 레드라인 중 하나를 위반했는데, 헝다그룹은 3가지 모두 기준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국내 은행 대출이 막히게 됐죠. 그러다 보니 높은 이자를 주고 해외에서 단기 부채를 끌어다 쓰다 결국 파산 지경까지 간 겁니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2기 시작을 앞둔 2017년부터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고품질 발전 노선’을 내놓았죠. 당시 시 주석은 “주택은 주거를 위한 것이지 투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헝다그룹은 그해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200억 달러의 자본을 유치해 부채 비율을 낮추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2018년 이후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중국은 부동산 분야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30%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죠. 그러다 보니 설마 업계 1위인 우리를 죽이겠느냐고 생각한 겁니다. 대마불사론이죠.
◇성장률 1% 포인트 이상 하락 전망
헝다그룹 파산은 중국 경제에 큰 부담입니다. 당장 성장률이 1% 포인트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와요.
전국 280개 도시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1300개나 되는데, 입주가 지연되는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겁니다. 국유기업들이 이어받아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대한 줄이도록 하겠죠.
헝다그룹 부채 중 이자를 내는 부채는 900억 달러가량 되는데, 이 중 23% 가량인 200억 달러는 해외 부채입니다. 신인도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갚아야 할 돈입니다.
중국 당국이 이런 부작용과 비용을 각오하고 헝다그룹을 고사시킨 건 중국 부동산 시장 거품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일본 거품 붕괴 때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하죠.
이 거품이 터진다면 중국 경제는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을 겁니다. 헝다그룹 파산은 이런 위기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