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이야기입니다.
빈 필하모닉은 베를린 필과 함께 세계 정상을 다투는 명문 오케스트라. 연주 실력이 최고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합창과 휘파람 실력까지 빼어날 줄은 몰랐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의 유서 깊은 음악당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신년 음악회 무대였다.
1939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흥겨운 춤곡으로 새해 정초의 지구촌을 깨우는 클래식 최고의 ‘히트 상품’. 세계 90여 나라의 안방과 극장에 중계된다. 한국에서도 복합 상영관 메가박스에서 실시간 상영했고, 9일 밤 KBS 1TV를 통해서도 녹화 방송 예정이다. 지난해 만해(萬海)평화대상 수상자인 세계적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79)이 올해 지휘봉을 잡았다. 바렌보임이 빈 필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건 2009년과 2014년에 이어서 이번이 세 번째다.
매년 연주회에서 달라지는 곡과 변하지 않는 곡을 살펴보는 것도 신년 음악회의 숨은 재미다. 올해는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칼 미하엘 치러(1843~1922)의 ‘밤 올빼미’ 왈츠를 음악회 8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연주했다. 600여 곡의 왈츠와 오페레타를 남긴 치러는 당대 슈트라우스 부자의 최고 라이벌로 꼽혔다. 연주 도중 빈 필 단원들은 은은한 호른 반주에 맞춰서 즉석 합창을 선보였고, 하프와 더블베이스의 연주에 따라서는 유쾌한 휘파람까지 불었다. 무지크페라인을 채운 관객 1000여 명의 박수갈채도 더욱 커졌다.
지난해 신년 음악회는 코로나 여파로 관객 없이 비대면 공연으로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1000명까지 관객을 받았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2000명 안팎에 이른다. 빈 필하모닉 역시 지난해 11월 방한(訪韓) 공연 이후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는 대면 공연이 중단된 상태다. 올해 신년 음악회만 예외적으로 허용한 셈이다. 전체 1700여 석 가운데 1000석만 채우고, 백신 접종을 마치거나 48시간 이내 음성 판정을 받은 관객들만 입장하도록 했다. 관객 모두 마스크를 쓰고 관람한 건 물론이었다.
신년 음악회에서는 단원과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무언(無言)’의 전통이 있다. 후반부 앙코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전주를 시작하면 관객들이 서둘러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고, 지휘자와 단원들이 연주를 멈춘 뒤 신년 인사를 보내는 관습이다. 이날 바렌보임은 청중을 향해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는 방역의 재난일뿐 아니라 전 인류의 재난이지만, 그 속에서도 많은 음악인이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오늘 음악회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클래식이 세상을 향해 보낼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