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와 신발 잡화점 상표 등으로 친숙한 새가 있습니다. 펠리컨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익숙한 사다새죠. 유난히 커다란 부리아래의 주머니와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친숙하고 푸근한 느낌을 주는 새이기도 하죠. 동물 사이트 로링 어스(Roaring Earth)에 최근 소개된 위의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마음씨 좋은 사다새 아저씨가 귀여운 이웃집 아기오리를 부모에게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만 같습니다. 사다새의 눈에는 자애로운 기품이 가득하고, 이제 세상 구경을 시작한 아기 오리의 눈은 똘망똘망하고 영롱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사다새가 아기오리를 보듬는 상황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저 새끼오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어떻게든 사다새의 부리속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을테지만 끝내 실패하며 기진맥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다새는 버둥거리는 고개를 위로 홱 젖혀 새끼오리를 목구멍으로 탈탈 털어넣었을 것입니다. 새끼오리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최후의 몸부림을 쳤을테지만, 탈출에는 실패했을 것입니다. 만일 저 사다새가 육아중인 어미새였다면, 다시 햇볕을 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산채가 아니라 반쯤 녹아들어간 곤죽이 된채 사다새 새끼들의 먹이로 게워졌겠죠. 잔혹해도 그게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수리·매·올빼미로 대표되는 맹금류, 왜가리와 백로 등 목이 긴 물새들은 천생 살과 피에 의존해 살아가는 육식조입니다. 동족 조류들에게는 이만한 빌런이 없지요. 반면 사다새는 푸근하고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이면에 어마무시한 사냥실력과 식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반전의 마력을 가졌기에 어쩌면 맹금류와 왜가리류를 능가하는 빌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세계 7종이 알려져있는 사다새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 인간이 사는 모든 대륙에 분포해있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생김새가 조금은 다르지만 이 족속의 공통적인 트레이드마크는 널찍한 아랫부리의 주머니죠.
이 널찍한 자루 같은 아랫부리 때문에 때로는 움직이는게 거추장스러워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폼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닙니다.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요. 우선 개가 혓바닥을 내밀어 체온을 조절하듯이 사다새는 부리 주머니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서 달아오른 체온을 내립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 부리의 주머니는 수리나 매에 있어서 날카로운 발톱처럼 사냥의 필살기라는 점입니다.
이 족속은 적어도 야생에서는 오매불망 살아있는 고기만 탐합니다. 아무래도 물새다 보니 주 타깃은 물고기일 듯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먹거리가 다양합니다. 야생동물 매체 ‘익스플로레이션’은 사다새가 먹는 의외의 식사거리 스물 여섯가지를 나열했습니다. 어떤게 있을까요? 비둘기·게·가재·거북·도마뱀·개구리·펭귄·은빛갈매기·회색갈매기·켈프갈매기·바다오리의 새끼·황로의 알과 새끼·부비새·왕관가마우지·페루슴새·북극제비갈매기, 그리고 동족의 새끼였습니다. 나열된 것의 80%가 같은 새입니다. 사다새가 새를 잡아먹는다는게 정말 사실일까요? 여기 동영상이 있습니다.
동물원 물새장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던 비둘기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사육사가 주는 생선에 길들여져있던 사다새가 종족 특유의 사냥 본능이 발동했던 것일까요? 비둘기를 낼름 덮쳤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 같았던 녀석은 날갯짓을 하며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살아나려는 비둘기의 힘보다, 먹어치우려는 사다새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먹잇감의 최후의 몸부림으로 자신의 목구멍은 물론 부리와 전신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는 식욕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이 BBC 다큐멘터리 동영상에서는 빌런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여러마리의 사다새들이 깡패처럼 부비새의 번식지를 활보하며 새끼들을 부모앞에서 부리로 나꿔채가 삼켜버립니다. 눈앞에서 당하는 부모새의 절망감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날카로운 발톱도 갈고리 같은 부리도 없는 새들이 뒤뚱뒤뚱 돌아다니면서 탐식하는 모습은 오히려 독수리나 수리부엉이의 공격보다 더 무섭습니다.
사다새의 사냥방법은 생김새에 최적화돼있습니다. 물고기를 잡을 때는 뜰채로 뜨듯 물과 물고기를 함께 건져올립니다. 부리 끝에는 갈고리가 있어 물고기를 낚아채는데 유용하게 쓸 수 있죠. 모든 사다새들이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달리 덩치는 작지만 강렬한 털색깔을 하고 있는 갈색사다새의 경우 21m 높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낙하해서 물속에서 고기를 잡습니다. 반면 유럽흰사다새의 경우 여럿이 무리를 지어 반원형으로 둘러앉아서 날갯짓을 하며 물고기를 몰아가는 ‘협동 작전’을 구사하기도 하지요.
먹이를 통째 삼키는 새들이 그렇듯 사다새의 소화 기능도 동급 최강입니다. 핏줄이 선연히 들여다보이는 부리 주머니에서 몸부림치는 식도로 산채 먹잇감을 넘기고 나면 우선 위에서 초강력 산성의 소화액이 흘러나와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립니다. 덩어리진채로 모래주머니로 이동해 믹서처럼 갈려서 잘근잘근 쪼개지지요. 이 과정에서서 털이나 뿔처럼 소화가 불가능한 것들이 추려져 별도의 덩어리로 분리됩니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봄나들이객으로 동물원으로 붐비겠죠? 사다새가 터잡은 물새장에서 얼쩡거리는 비둘기가 보이면 경고메시지라도 날려주고 싶습니다. 쟤들이 언제 야성 본능이 발생할지 모르니 멀찍이 떨어져있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