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처럼, 그 이름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짐승들이 있습니다. 뱀의 경우, 단연 아나콘다이지요. 몸길이가 최장 9m에 이르는 이 괴물뱀은 두 말 할 것 없는 아마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그런데 아나콘다의 처참한 최후를 담은 사진이 최근 화제입니다. 이 강의 제왕을 제압한 주역은 아마존에 사는 민물돌고래인 아마존강돌고래(일명 분홍돌고래)입니다. 핑크빛 몸색깔에 새의 부리처럼 튀어나온 입, 돌고래 특유의 익살스럽고 앙증맞은 눈매에 멸종위기종이라는 희소성까지 겹쳐서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동물이죠. 그런데 이 아마존강돌고래와 아나콘다 사이에 얽힌 이야기는 먹고 먹히는 싸움이나 영역투쟁에 관련된 게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해외언론들이 사진이 촬영된 전후 맥락 사정을 전했어요.

볼리비아의 강에 살아가는 강돌고래 두 마리가 베니 아나콘다의 몸뚱아리를 물고 나란히 헤엄치고 있다. /Omar M. Entiauspe Neto, Steffen Reichle, Alejandro dos Rios

인간의 잣대와 감수성으로 짐승들의 만사를 재단하고 평가하는게 얼마나 부질없고 무의미한 일인지 말해주는 스토리입니다. 사진이 찍힌 것은 작년 8월 볼리비아를 흐르는 티하무치강이었습니다. 이 강 일대의 생물다양성을 조사하기 위해 볼리비아의 산타 크루즈 델라 시에라 자연사박물관 소속 과학자 3명이 탐사 중이었습니다. 유유히 흘러가던 강을 살피던 과학자들 눈에 지금껏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BBC 어스 에서도 보여준적이 없는 기이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낸 강돌고래였습니다. 모두 여섯 마리였죠. 분홍빛 강돌고래는 보통 수면 아래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따금씩 지느러미나 꼬리를 잠시 물밖으로 내미는게 전부입니다. 가뜩이나 보기 힘든 이들이 화면에 포착된 시간은 7분여입니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머리까지 수면 바깥으로 내밀고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무리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기 네마리와 성체 두 마리로 구성돼있었습니다.

작년 8월 볼리비아의 강에서 강돌고래 무리가 아나콘다를 물거나 몸에 감고 헤엄치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Omar M Entiauspe NetoOmar M Entiauspe Neto, Steffen Reichle, Alejandro dos Rios, Ecology (2022).

그런데 성체 두 마리의 입에 뭔가 기다란게 물려있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뱀의 몸뚱아리임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검은색과 고동색, 노랑색 등이 규칙적인 무늬를 이룬 뱀의 비늘이었죠. 아나콘다 중에서도 볼리비아에만 사는 특산종 베니 아나콘다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혼이 빠져나가버린 산송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성체 돌고래 두 마리가 몸뚱아리를 나란히 물고 텀벙텀벙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뱀의 몸뚱아리가 마치 벨트처럼 돌고래의 옆구리를 휘감는 듯한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두 가지는 명확했습니다. 가련한 아나콘다는 이미 축 늘어진 사체였고, 심술궃게 물질을 하는 강돌고래들은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귀여운 외모 때문에 인기 만점인 돌고래 벨루가. /미 국립대양해기국(NOAA) 홈페이지

이 아나콘다는 강물을 유유히 헤엄치다가 돌고래떼라는 날벼락을 만나서 비명횡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 숨이 끊어졌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을 돌고래들이 입으로 물고 다닌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들은 먹지도 않을 뱀의 몸뚱아리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돌고래 무리가 성체와 청소년들로 구성된 것을 봤을 때, 뱀의 몸뚱아리를 교보재로 활용한 사냥술 수업일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됩니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번 생태 탐사 및 연구 논문 작성에 참가하지는 않은 한 과학자가 다소 도발적으로도 읽힐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 연구소의 소냐 빌트 박사는 뱀의 몸뚱아리가 돌고래들이 쾌락을 탐닉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물증으로 사진 속 성체 돌고래들의 모양새를 언급합니다.

독특한 이빨 때문에 '바다의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일각고래. /미국 기후변화 홈페이지. climate.gov

이들의 신체 상태가 평소때와는 다르게 매우 극도로 흥분돼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흥분 상태를 야기한 도구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것이 입에 물린 뱀의 몸뚱아리입니다. 달리 말하면 혼이 빠져나간 뱀의 사체가 돌고래들의 최음제, 혹은 성인용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돌고래들이 평소답지 않게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는 점, 이들의 주식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물고기들이라는 점도 이 비정상적 장면의 곡절을 뒷받침해준다는 것이죠. 만일 아나콘다가 멀쩡히 살아있다가 돌고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면, 동물 세상에는 먹기 위해서가 아닌 쾌락 탐닉을 위한 가혹한 사냥이 존재한다는 가설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대형 돌고래인 범고래. 포악하고 잔인한 사냥꾼이지만, 애틋한 가족애로도 유명하다. /워싱턴주의회 민주당 홈페이지

이런 가설로 인해 똘똘하고 친근한 동물의 대명사 돌고래가 사뭇 섬뜩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돌고래를 사육중인 수족관과 야생 관찰을 통해 돌고래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신체적 쾌락을 탐닉한다는 사례들이 보고돼있습니다. 사실 돌고래는 놀랄만한 지능과 행동양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인원의 침팬지와 각각 바다와 땅에서 쌍벽을 이룹니다. 또한 여타 동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감정을 발산하기도 하죠. 고래는 크게 입의 구조에 따라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나뉘는데, 돌고래는 모두 이빨고래에 속합니다. 아마존 강돌고래를 근접 촬영한 내셔널지오그래픽 동영상입니다.

만화 캐릭터 같은 깜찍한 생김새로 유명한 벨루가, 뿔처럼 앞으로 솟은 이빨 때문에 ‘바다의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일각고래, 바다의 티라노사우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범고래 등이 모두 돌고래 무리에 속합니다. 이 중 일부 무리는 하구에서 깊이 들어간 강에 완전히 터를 잡고 그곳에 고립되다시피 살아가면서 강돌고래가 됐지요.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다른 돌고래보다 원시적인 족속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빼어난 지능과 오욕칠정을 탐닉하려는 복잡다단하고 미스터리한 행동양식만큼은 넓은 바다의 동족들 못지 않습니다. 그 넓은 바다만큼이나 동물들의 행동양태는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