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변은 멸망, 또는 재앙의 징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동물에 있어선 더욱 그러합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이 땅에 살지 않았던 짐승들이 보였을 때 인간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과학적 분석이 불가능했던 고대일수록 더욱 그랬겠죠. 기술이 발달하고 객관적 추론과 연구가 가능해진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아닙니다. 이를테면 여름의 전령 달팽이의 몸뚱아리가 갑자기 열배가 커진 채,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곧 다른 세상이 임박하지 않았나, 하는 섬뜩한 공포감에 머리가 쭈뼛 서지 않을까요?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에 출몰한 괴물달팽이가 주는 공포감처럼 말입니다. 몸길이는 15㎝에 이르는 아프리카 거인 달팽이(Giant African Land Snail)가 원산지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대서양 건너 플로리다땅에서 다시 발견됐습니다. 플로리다 주당국은 긴급 조치를 발령하고 퇴치를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입니다. 한낱 미물로 여겨지는 달팽이에 대해 만물의 영장 인간이 ‘아마겟돈(최후의 전쟁)’을 선포한 모양새입니다. 이 퇴치작전 과연 성공할까요? 쉽지 않아보입니다. 이번 전쟁에 벌써 세번째거든요. 다시 말해 괴물달팽이가 플로리다에 세번째로 상륙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969년 처음 발견돼 7년간의 혈투 끝에 1975년 완전 퇴치를 선언했습니다.
한동안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21세로 접어들고 2011년에 다시 발견됩니다. 대도시 등이 밀접해있는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였어요. 다시 사투가 시작되고 10년만인 2021년에 퇴치작전이 완료됐어요. 그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바로 한 해 뒤에 다시 괴물 달팽이가 모습을 드러낸거죠. 어쩌면, 코로나처럼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가는, 위드 괴물달팽이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달팽이가 두려움을 주는 까닭은 어마무시한 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먹어치우는 식물 종류가 자그마치 500종류가 넘습니다. 작은 풀부터 악어와 도마뱀, 바다거북까지 촘촘하게 이뤄진 먹이사슬을 송두리째 흔들고 찢어버릴 수 있는 악마적 존재입니다. 이 거대 달팽이는 인간에게도 존재론적 위협입니다. 여러가지 유실수와 원예작물, 바나나, 아보카도 등의 농작물의 씨를 말릴 수 있어요. 게다가 인간에게는 뇌수막염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기생충인 쥐폐선충을 옮길 수 있거든요.
괴물 달팽이와의 아마겟돈에 나선 인간의 탄환은 ‘메탈데하이드’라고 불리는 살충제입니다. 주로 달팽이와 민달팽이류를 겨냥해 특화된 살충제로 이들이 움직이거나 소화를 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끈적한 점액의 분비를 방해합니다. 점액은 달팽이류들의 생명줄입니다. 이 점액이 끊기면 몸이 말라붙기 시작해요. 메탈데하이드의 ‘약발’이 제대로 먹힌 달팽이들은 숨을 곳을 찾아 이동한 뒤 서서히 말라죽어갑니다. 뙤약볕에 잘못 기어나왔다 말라붙어 개미밥으로 전락해간 여름날의 달팽이들의 최후의 모습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약을 쳐서 벌레를 잡는다니, ‘침묵의 봄’을 통해 살충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레이철 카슨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며 무덤을 파헤치고 뛰쳐나올 노릇입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라도 제어에 나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괴물 달팽이의 번식속도는 폭발적입니다. 플로리다 뿐 아니라 미 전역에서 이 괴물달팽이 퇴치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남쪽 카리브해에 접한 중미 국가들도 이 외래종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요. 생후 4개월이면 성적으로 성숙해서 번식이 가능해집니다. 평생 최소 수천개의 콩만한 크기의 알을 낳아요. 통상 달팽이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습기찬 녹지대 뿐만 아니라 더 열악하고 오염된 곳에서도 살아갑니다. 터전이 영 아니다 싶으면 흙속으로 몸을 파고 들어가 1년 가까이 ‘침잠 모드’로 돌입하기도 해요. 달팽이는 느림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이들은 자동차에 들러부터 재빨리 먼 곳으로 이동하는 테크닉까지 습득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육식성이 아닌게 그나마 천만다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일부 달팽이는 육식성입니다. 뉴질랜드 원산 거대 달팽이가 놀랄만한 흡입력으로 지렁이를 빨아들인뒤 분쇄해먹는 장면을 담은 뉴질랜드 자연보호국 동영상 일부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한낱 미물로 알고 있는 달팽이, 알고보면 참 무서운 짐승입니다. 오징어·문어·조개와 같은 연체동물인데, 그 집안 중 유일하게 뭍에 살도록 허락됐습니다. 그래서 숨도 허파로 쉬고요. 껍데기가 있는 달팽이나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 모두 어디가 발이고 어디가 배인지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배가 발이고 발이 배인 셈이죠. 이들의 복족(腹足)류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배에 발이 달린 것만큼 희한한 신체적 특징이 또 있어요. 혀에 달린 촘촘한 이빨입니다. 달팽이의 식사장면을 보면, 풀잎사귀가 입가에 닿을 때 빠른 속도로 갈려서 없어지는데, 이건 바로 혀에 돋은 날카로운 이빨 덕이죠. 핥는게 곧 씹는 셈이죠. 달팽이에게 프렌치 키스는 곧 동반자살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기왕 프렌치 키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달팽이의 독특한 사랑법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달팽이는 한 몸에 암수의 생식기관이 모두 달려있어요. 생식기관은 머리 부근에 있습니다. 그래서 두마리가 사랑을 나눌 때는 머리와 머리를 맞닿은 모양을 한 채, 자신의 정자를 상대방의 몸속에 넣어주고, 파트너의 정자를 받아 자기 몸속에 품습니다. 여건과 상황이 허락하면, 두 마리 모두 임신을 시키는 동시에 임신을 하는데 성공합니다. 유튜브 Ayher08′s Journey 에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달팽이 두 마리가 진한 몸짓으로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유전자를 뿌리고, 상대방의 유전자를 받는 장면입니다. 자손만대 번성을 위한 장엄하고 처절한 몸짓입니다.
장마철 바닥을 꼬물거리며 돌아가는 이 달팽이들의 삶은 이렇듯 범상치 않습니다. 여름의 전령, 우아한 프랑스 식재료, 그 이상의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족속이죠.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토종 달팽이들은 먹이그물의 건강함을 유지해주는 건강한 한 축입니다. 달팽이와 유독 마주치기 좋은 시절입니다. 걸어가거나 뛰어갈 때 신발에 짓눌려 횡액을 당하는 일이 없게끔 달팽이들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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