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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업계는 요즘 초상집입니다. 10월7일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조치가 너무 강력해 앞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거든요. 이 조치가 나온 후 첫 증시 개장일인 10월10일 중국 반도체 주식은 7%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이번 조치는 ‘첨단 컴퓨터와 반도체 제조 항목에 대한 새로운 대중 수출 통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크게 봐서 세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슈퍼 컴퓨터, 인공지능 개발 등에 쓰이는 고성능 반도체 칩 수출 차단입니다. 자율주행차, 5 G 통신망, 클라우드 등 많은 첨단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산 고성능 칩을 사용해요.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 무기 개발에도 쓰입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이런 칩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거예요.

10월7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방안. /미국 상무부

◇중국 반도체 싹 자르기

두 번째로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와 중간재 수출을 막은 겁니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나노 단위의 미세 회로를 새겨 만들죠. 불순물이 없도록 표면을 세정하고, 진공 상태에서 증기 형태의 금속화합물이나 감광제를 코팅하고, 이렇게 코팅된 표면에 빛을 쏴 회로를 그리는 수백 개의 복잡한 공정이 있습니다.

세정, 증착(蒸着), 식각(蝕刻), 이온 주입, 노광 등으로 부르는 이런 공정에는 첨단 장비가 대거 소요되는데, 대부분 미국과 일본 기업이 공급해요. 이런 장비나 자재가 없으면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도 못 버팁니다. 2019년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당시 일본이 불화수소 등 첨단 소재 수출을 통제해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죠.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대당 가격이 1500억원으로 첨단 반도체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다. /ASML

미국은 16나노 이하의 로직칩, 18나노 이하의 디램, 128단 이상의 낸드 메모리 생산에 들어가는 장비와 자재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만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걸 차단하겠다는 뜻이에요.

반도체는 10나노급 이하의 첨단 분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28나노급,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화상처리칩은 30나노급 기술로 생산되고, 전력용 반도체는 그보다 더 정밀도가 떨어진다고 해요.

중국도 이런 정도의 반도체는 자체 생산을 합니다. 장비도 어느 정도 자급을 하구요. 다만, 그 수준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려면 미국·일본 기업의 첨단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을 포함한 개도국을 영원히 공급망의 하단에 묶어두려는 의도”라고 미국을 비판했는데, 바로 이런 의미에요.

◇중국계 미국인 취업도 차단

세 번째는 미국 고급 인력의 중국 반도체 업체 취업 차단입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엔 많은 미국인 기술자들이 들어가 최고경영자(CEO)나 개발 담당 임원으로 일해요. 대부분 미국 반도체 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중국계 미국인인데, 그 수가 200명가량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미국에서 장비와 자재를 사오고 기술을 제공해 중국이 그나마 이 정도 반도체 생산을 하는 거죠. 미국이 이런 인력의 공급을 막으면 중국 반도체 기업은 마비가 된다고 합니다. 중국이 이번 조치 중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에요.

중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반도체 기업 리스트. 사장과 부사장, 재무책임자 등 고위 임원 대부분이 미국 국적을 보유한 중국계 미국인이다. /트위터

이번 수출 통제 조치를 보면 미국이 ‘독수(毒手)’를 뒀다는 느낌이에요. 완제품과 제조 장비, 중간재, 인력에 이르기까지 중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두 막아버린 겁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 뿐 아니라 중국 기술산업 전반에 쓰나미가 올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와요.

중국 투자은행 화싱(華興)자본의 우스하오 사장은 파이낸셜타임즈에 “부드럽게 말해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제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인사도 “거의 ‘완결판’이라고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제재”라면서 “실리콘 반도체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기술을 독자 개발하지 않는 한 중국 반도체 산업이 살아날 길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화웨이 이어 YMTC도 정조준

이번 제재에는 화웨이 제재 경험이 참고가 됐다고 해요. 화웨이는 지난 2년간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칩 공급을 차단당하면서 매출액이 급감하고 스마트폰 시장 경쟁 대열에서 탈락했습니다. 이걸 보고 이런 식의 수출 통제의 효과를 확신하게 됐다는 거예요.

미국은 이번엔 중국 반도체 업계의 맏형으로 통하는 국유기업 YMTC를 예비제재대상인 미검증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YMTC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애플은 최신 스마트폰 아이폰 14 시리즈에 이 업체가 만든 낸드플래시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선일보DB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이 문제였나

시진핑 주석의 연임을 코앞에 두고 미국이 이런 끝장 제재를 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옵니다. 중국이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하고 애플이 최신 아이폰 14 시리즈에 중국산 낸드플래시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심상찮은 움직임으로 미국 정부를 자극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장 많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중국 때리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더군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만 업계는 미국의 제재에 순응해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을 모두 중단했는데, 중국은 반대로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액을 대거 늘렸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면서 미국의 제재 방침을 거스른 중국을 손보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중국 반도체 전문 미디어 '반도체업계관찰'에 올라온 중국과 대만의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 월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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