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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방산 수출이 170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올해에도 장밋빛 기대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장밋빛 기대가 현실화하려면 빨리 풀어야할 숙제들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숙제 가운데 일종의 규제 개혁인 ‘방위사업계약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 여야의원 29명이 이례적으로 공동 발의한 방위사업계약법
우선 ‘방위사업계약법’이 뭔지에 대해 살펴보지요.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방위사업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률’인데요,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 29명이 공동으로 발의했습니다.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여야 의원들이지만 방산을 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한 방위사업계약법에 대해선 여야가 뜻을 같이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이 법안은 방위사업 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해 지체상금(계약이행 지체에 대한 손해배상액) 감면, 한국산 우선구매제도, 품질·성능을 우선한 낙찰자 결정, 업체 도덕적 해이 방지 강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그동안 전투기, 전차, 자주포, 항공기 등 방산물자를 구매할 때 적용할 별도의 법이 없어서 예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일반물자에 적용하는 국가계약법을 적용해 왔는데요, 국가계약법은 단순 조달 사업은 문제가 없지만 첨단무기체계 연구개발(R&D) 특성 등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지요.
◇ 도산안창호함의 33억 장비 때문에 948억 지체상금 물게된 대우조선해양
우선 국가계약법은 방산 업체의 납기가 지연되면 벌금 성격의 ‘지체상금’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신무기를 개발하려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방과학기술 선진국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보니 국가계약법에 따라 어처구니 없이 많은 지체상금을 물게 되는 사례도 생기는데요, 해군이 자랑하는 첫 3000t급 국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1조원 짜리 도산안창호함은 성능을 기대 이상으로 충족시켰지만 33억원 짜리 어뢰기만기에 문제가 발생해 납기가 110일이 지연되면서 무려 948억원의 지체상금을 물게 됐습니다. 정부의 설계변경 등으로 일정이 지연돼 기간 내 완성하지 못하거나, 제품 성능이 조금만 미흡해도 업체를 부정당 업자로 낙인찍고 각종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생기곤 했습니다. 때문에 지체상금이 부과된 업체들은 대부분 소송을 통해 액수를 낮추거나 취소 처분을 받는데요, 소송 과정에서 업체와 정부 당국(방사청) 모두 막대한 소송 비용이 들고 시간도 끌게 됩니다. 국가적인 돈, 시간 낭비가 초래되는 것이지요.
국가계약법상 최저가 입찰방식도 큰 문제입니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경쟁계약이 원칙이며 공급자가 불특정 다수여서 시중의 평균원가가 입찰시 예정가격(입찰시 발주자가 작성한 가격)이 됩니다. 방위사업은 공급자가 소수임에도 경쟁계약을 적용해 최저가 수주로 더욱 내몰리는 상황인데요, 지난해 9월 해군 차기 호위함 건조 입찰은 최저가 입찰 제도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힙니다.
◇ 방위사업계약법, 논란 많은 최저가 입찰방식도 대폭 개선
방위사업청은 차기 호위함 울산급 배치(Batch)-Ⅲ 3·4번함 입찰 결과 예정가(8059억원) 보다 1000억원이나 낮게 써낸 S사를 선정했는데요, 이 업체는 함정 건조경험도 부족할 뿐더러 이런 비용으로 최신예 대형 함정 2척을 건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한 방위사업계약법을 마련해 적극 추진중인데요, 지체상금의 경우 완화해 적용하고 업체가 도전적으로 연구개발하다 실패했을 경우 배려해주는 이른바 ‘성실수행 실패’도 도입했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 체결이 추진됨에 따라 국내 방산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산 우선구매제도, 최저가 보다는 품질·성능을 우선한 낙찰자 결정 제도도 포함했다고 합니다.
방위사업계약법에 대해선 여야 의원들도 동의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있다는데요, 기재부(기획재정부)가 별도 계약법 제정시 국가계약제도가 형해화하고 국가계약 기본원칙(공정성,신의성실)을 훼손하며 과도하게 기준을 완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기재부는 국가계약제도 형해화 등 이유로 반대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별도 법 제정은 국가계약 제도를 형해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고화하는 것이고, 성실수행 실패 인정은 공정성과 신의성실 원칙의 위배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또 국가간 정부조달시장 개방을 주요 골자로 하는 WTO 정부조달협정이 국방조달 시장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 등 국제통상규범 상 국방조달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엄동환 방사청장은 “현재 국가계약법은 단순 제조·구매, 건축, 토목공사 등에 특화돼 있는 계약법이다 보니 첨단기술, 도전적 R&D를 수행하는 국방 방위력 개선 사업에 적용하기에 다소 미흡한 부분과 제한 사항이 있다”며 “현재 국회에 (방위사업계약법) 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관련 부처와 충실히 협의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세계 4대 방산수출국 도약” 윤 대통령 공언 이행 위해서도 방위사업계약법 조속 추진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오는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수출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이를 위해선 도전적 국방 연구개발(R&D)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고 방위사업계약법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방위사업계약법에 대한 기재부 등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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