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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중국 외교가 사면초가 신세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편들면서 가뜩이나 미국 등 서방의 외교적 압박이 큰 상황인데 세르비아와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 대표적인 친중국 국가마저 중국에 등을 돌리고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했어요. 10년 이상 공을 들여 구축한 남태평양 도서 지역 친중 네트워크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 편을 들었지만, 결과는 제 꾀에 넘어가 국제사회의 ‘왕따’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최근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 노선을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이런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중국, 우리와 시스템 달라”
남태평양 도서 지역은 지난 한 해 미·중 외교의 전쟁터였죠. 솔로몬제도를 중심으로 한 친중 국가들이 중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나서자 미국과 호주가 견제에 들어가면서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습니다.
피지는 솔로몬제도와 함께 중국에 우호적인 남태평양 도서 국가의 하나로 꼽히는데, 이 나라가 최근 2011년 중국과 맺은 공안 협력 양해각서 파기를 선언했어요. 작년 12월 총선 승리 후 취임한 시티베니 라부카 신임 총리는 1월26일 피지 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 공안 인력이 더는 피지 경찰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피지는 그동안 이 양해각서에 따라 매년 피지 경찰관을 중국에 보내 훈련을 받도록 하고, 중국도 공안 요원들을 피지에 파견해왔어요. 작년 9월에는 피지에 중국 공안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도 했습니다.
라부타 총리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사법 시스템은 (중국과) 달라서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유사한 시스템을 가진 호주나 뉴질랜드 경찰이 피지에 와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피지는 작년 5월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결정해 중국 외교에 큰 타격을 줬죠.
◇세르비아 “EU 가입이 우리의 길”
사실 중국에 더 뼈아픈 일은 세르비아 등 친중 국가들의 변신입니다. 동유럽의 대표적인 친중 국가이자 러시아와도 가까운 세르비아는 1월 중순 러시아 용병조직 와그너 그룹이 세르비아에서 용병을 모집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어요.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세르비아가 러시아와 전통적으로 좋은 관계이지만 그것이 크렘린의 모든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러시아가 합병한) 크름반도와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영토”라고 했습니다.
세르비아는 동유럽의 일대일로 협력국 중 하나로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산 백신을 구매하는 등 줄곧 중국 편을 들어온 나라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는 등 중국과 보조를 맞춰왔습니다. 이런 나라가 중국에 등을 돌린 거죠.
세르비아는 유럽연합(EU)과의 무역이 전체 무역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EU 가입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EU 가입을 위해 친서방 노선으로 돌아선 거죠. 그는 “EU 가입이 우리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했습니다.
◇파키스탄, 우크라이나에 탄약 보내
동남아 국가 중 중국 말을 가장 잘 듣는다는 캄보디아도 우크라이나 공병 15명을 자국으로 초청해 지뢰 제거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으로 지뢰 제거 경험이 풍부하죠. 지뢰 탐지 장비는 일본이 제공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철의 형제(巴鐵)’라고 부르는 파키스탄도 155밀리 포탄 등 컨테이너 159개 분량의 탄약을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보냈어요. 우크라이나는 그 대가로 파키스탄이 옛소련에서 도입한 MI-17 헬기와 T-80UD 탱크 등을 수리할 기술자를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파키스탄이 중립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한다고 하자 EU는 파키스탄에 재난 복구 자금 5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은 친중국가들의 변신에 대해 “미국 등 서방국가가 정치적으로 조종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초조해하는 모습이에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가 서방 국가들이 주도하는 반러 진영과 중국 중심의 중립 진영으로 나뉘었는데,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반러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거죠.
◇미중 대화 통해 고립 탈출 모색
작년 말부터 중국 외교는 미묘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1월 초 그동안 강경하고 위압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국경해양사무사 부사장(부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죠. 자오리젠은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주장하는 등 궤변과 억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국경해양사무사 부사장 자리는 한직으로 사실상 좌천됐다고 할 수 있어요.
미중 관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1월 중순 다보스포럼 참석차 스위스를 방문한 류허 중국 부총리는 취리히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3시간 동안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옐런 장관을 중국으로 초청했죠. 5~6일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미국과 대화의 물꼬를 터서 어떻게든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보여요. 미국도 러시아에서 중국을 떼어놓을 수 있다면 이런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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