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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4대 파벌 중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은 부류가 도마뱀족(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어처럼 최강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뱀과 같이 극강의 징그러움의 마력을 발산하는 것도 아니며, 거북처럼 등껍질이라는 방어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도마뱀 무리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작고, 연약하고, 도망가고, 가련하죠. 단 한 종류, 이 괴물만 빼고 말입니다. 도마뱀(lizard)인데도 용(dragon)으로 불리는 초강력 몬스터, 코모도왕도마뱀 말입니다.
다 자란 몸길이는 3m에 이르는 이 괴수가 목을 쳐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앞발과 뒷발을 엑스자형으로 교차하며 성큼성큼 달려가는 걸 보면 티라노사우루스나 벨로시랩터 같은 선사시대 무적의 육식공룡이 저랬겠구나 싶습니다. 이 괴수가 인도네시아 정부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한정된 지역에만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일 숫자가 증식돼 외래종으로 침입할 경우 동남아 원산지로 플로리다의 습한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해 토종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는 버마비단뱀은 비교도 되지 않을 공포의 괴수로 자리잡을 것이 확실합니다. 강력한 타격력을 가진 꼬리, 회색곰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날카로운 발톱부터, 독을 품고 짐을 질질 흘리는 입까지 이 괴물은 전신이 살상병기거든요. 최근 코모도왕도마뱀이 입속에 품은 독의 ‘효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동영상이 화제입니다. 잠깐 보실까요?
코모도왕도마뱀이 한번 물었던 고깃덩이와 보통 고깃덩이를 나란히 놓고 72시간동안의 변화를 견줍니다. 그저 한 번 물었을 뿐인데 괴물의 침이 배인 고깃덩이는 핏물이 빠지고 쪼그라들면서 급격히 썩어문드러져갑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독샘에서 흘러나오는 톡신은 먹잇감의 혈압을 떨어뜨리고, 응고를 막는 작용을 합니다. 상처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던 먹잇감은 비틀비틀거리다 끝내 쓰러지고 말지요. 한때는 코모도왕도마뱀의 입속에 드글드글한 괴물 박테리아들이 먹잇감의 사냥을 돕는 거라는 추정이 힘을 얻었지만,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괴박테리아가 아닌 평범한 독이라는 것입니다.
독사와 마찬가지로 입 자체가 독을 품은 무기인거죠. 아닌게 아니라 분류학상으로 코모도왕도마뱀은 도마뱀 중에서 가장 뱀과 근접한 종류로 알려져있습니다. 끝이 갈라진 혓바닥을 입에서 날름거리는 것도 뱀과 빼닮았고요. 무엇보다 잘근잘근 씹어삼키는게 아니라 먹잇감을 통째로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삼키는 방식의 식사방식이 뱀의 그것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사실 코모도왕도마뱀의 무기는 날카로운 발톱도, 강력한 꼬리도, 독을 품은 이빨이라기보다 강력한 목구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목구멍으로 살아있는 초식동물을 통째로 거뜬히 삼킬 수 있거든요.
코모도왕도마뱀이 어린 멧돼지의 사체를 포식하는 동영상(Youtube ILLANK Adventure)을 보셨습니다. 돼지사체를 확보한 놈은 자신의 입보다 월등하게 큰 이 고깃덩이를 하나 남김없이 통째로 자기 위장속으로 들여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체를 물고 질질 끌며 다닐때만해도 통째 삼키는 게 불가능해보였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결국 입속에 우겨넣고 말죠. 식사의 마무리는 족발입니다. 숲속을 사뿐사뿐 다녔을 멧돼지가 갈라진 발굽을 마지막으로 코모도왕도마뱀의 뱃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에서 처연함과 자연의 무심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번에도 코모도왕도마뱀의 섬뜩한 먹방(Levi Akhmad Youtube)을 한 번 보시죠?
애저녁에 혼이 빠져나간 먼젓번의 돼지 사체와는 달리 이번에 코모도왕도마뱀의 입에 물린 것은 살아있는 원숭이입니다. 목덜미를 물린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원숭이 얼굴에서 공포와 절망의 감정을 똑똑히 읽을 수 있습니다. 부디 이 동영상의 잔혹한 상황이 일부러 만들어진게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 사람이 속한 영장류건 무엇이건 배고픈 괴수에겐 똑 같은 먹거리일 뿐입니다. 뱀이 순식간에 제 몸보다 두꺼운 먹잇감을 삼키듯, 원숭이는 아직 혼이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끝내 꾸역꾸역 삼켜지고 맙니다.
포식자 코모도왕도마뱀의 탐욕스러운 눈빛과 먹잇감으로 걸려든 사슴의 공포에 찬 눈망우리 선명히 대비되는 이 사진은 유튜브 동영상 캡처입니다. 해당 동영상을 첨부하지 않은 것은 목불인견도 이런 목불인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영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새끼를 밴 암컷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일까요? 괴물은 사슴의 연약한 복부를 끊임없이 공략합니다. 그리고는 어미 뱃속의 새끼를 끄집어냅니다.
절망에 가득찬 어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버둥거리는 새끼를 단숨에 삼켜버리죠. 그리고는 오픈돼 너덜너덜해진 사슴의 거죽 속을 혀를 널름거리며 헤집습니다. 피냄새를 맡고 온 동족들도 여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절규하는 사슴의 몸뚱이를 공략합니다. 이처럼 출산을 앞둔 암컷을 공략해 잔혹한 식육의 난장판을 벌이는 것은 사실 사자·하이에나·표범 등 대다수의 맹수들이 보이는 습성입니다. 한 단계 낮은 덜 진화된 파충류도 이런 습성을 보이는 것이 놀라운 일이죠. 코모도왕도마뱀들끼리는 언제나 협업하는 동족이자 동지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음의 동족포식 영상(varanus komodoensis channel youtube)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어린 코모도왕도마뱀은 지금까지의 자란 크기만으로도 어지간한 곳에서는 생태계 최상위권자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가 코모도왕도마뱀의 본가라는 점입니다. 거의 모든 파충류들과 마찬가지로 코모도왕도마뱀도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든 먹어치우려 듭니다. 동족의 새끼 몸뚱아리를 거뜬하게 목구멍으로 넘길 때 즈음 아직 입속으로 들이밀지 않은 가련한 피식자의 꼬리가 마치 포식자 코모도왕도마뱀의 혓바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새끼가 온전히 삼켜지기 전 흩날리는 꼬리 끝이 생애 마지막 몸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가공할만한 삼킴의 능력은 어떤 파충류보다도 강력한 턱 근육의 소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위장또한 대단한 파워를 지녀서 자기 몸무게의 80%선까지 거뜬히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애써 삼켰는데 어떤 이유로 위협을 느꼈을 경우 재빨리 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삼킨 것들을 게우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런 습성 역시 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해선 안될짓까지 한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속담 자체가 내포한 의미와는 별개로 이 말에서 무자비하게 포식하는 코모도왕도마뱀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제 뱃속을 채우기 위해 새끼를 밴 사슴이건 동족이건 가리지 않고 꾸역꾸역 뱃속으로 들이미는 이 괴수의 목구멍이야말로 포도청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아닐까 싶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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