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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새해 들어 호주산 유연탄과 면화 수입을 재개했습니다. 2020년 스콧 모리슨 당시 호주 총리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촉구한 데 격분해 취했던 대대적인 경제 보복 조치를 3년 만에 일부 해제하기 시작한 거죠.

중국 광둥성 해관(세관)은 1월 중순 정부로부터 호주산 유연탄에 대한 통관을 재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대 면화 수입상인 중화면화그룹의 호주 현지 자회사도 곧 호주산 면화를 산둥성 칭다오의 보세 창고로 운송한다고 해요. 3월에는 호주산 킹크랩 수입도 재개된다고 합니다.

◇무역 보복, 외교 손실만 초래

중국 당국이 공식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경제 제재 해제는 사실 시간문제로 보여요.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돈 파렐 호주 통상장관은 2월6일 2019년 이후 4년 만에 화상으로 통상장관 회담을 열었습니다. 호주산 킹크랩, 와인 등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 해제 문제를 논의했겠죠.

호주는 양국 관계 악화의 한 원인이 된 화웨이의 5G 통신망 사업 참여 배제 등 외교·안보, 인권 현안에 대해 조금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건 무역 보복이 호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고, 외교적으로 호주가 더 미국 쪽으로 기우는 결과만 낳았다는 반성에 따른 것으로 보여요.

2월6일 돈 파렐 호주 통상장관(왼쪽)이 호주 의회 사무실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화상회담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코로나 19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벌써 올 하반기에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중국 내에서 나오더군요. 서방 정상의 중국 방문은 중국의 외교적 고립 탈출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수출 다변화로 대중 의존 줄여

중국은 작년 5월 호주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자 곧바로 관계 개선에 나섰어요. 6월 양국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만났고 7월에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습니다. 호주가 요청해도 통화조차 거부하던 중국이 장관급 회담을 자청했다고 해요. 작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과 앨버니지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회복에 합의했습니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과 밀·보리·면화·와인 등에 대해 대대적인 수입 금지 조처를 했지만 호주가 입은 피해는 크지 않았어요. 중국 대신 우리나라와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선을 다변화하면서 대중 무역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고 합니다. 중국 철강산업에 필수적인 호주산 철광석은 아예 금수 조처를 하지도 못했죠. 그러다 보니 2021년엔 대중 수출액이 2020년보다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그 사이 호주는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4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구성했고, 미국·영국과 함께 오커스(AUKUS) 동맹도 체결했죠.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포위망에 적극 가세한 겁니다.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도 전수해주기로 했죠.

호주는 그동안 대중 무역 의존도가 30%가 넘는 점을 감안해 미중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취해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미국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호주 국민의 반중 정서도 고조됐죠. 중국 입장에선 경제를 무기로 호주를 굴복시키려다 오히려 역풍만 맞을 꼴이 됐습니다.

◇“외교노선은 무역과 별개”

새로 출범한 노동당 정부도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전임 정부와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어요. 호주 정부는 2월9일 250개 정부 건물에 설치된 중국산 폐쇄회로TV(CCTV)와 출입문 잠금장치, 영상기록장치 등 913대를 점검해 철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장치들이 민감한 정보를 수집해 중국으로 보낼 우려가 있다는 거예요.

2월22일에는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필리핀을 방문해 갈베스 국방장관과 남중국해 합동 순찰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남중국해는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동남아 각국이 대립하는 곳이죠. 미국이 추진 중인 합동 순찰에 참여하겠다는 뜻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작년 11월15일 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

호주의 입장은 무역은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정상화하되, 외교안보노선과 인권 문제는 자국의 이익, 가치관에 따라 독자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경제 문제를 정치화해 호주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8만명에 이르는 중국 유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을 재개하는 등 양국 교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에 성의 표시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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