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이 지나자 중국 내에서 이 전쟁이 주는 시사점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대만 침공을 노리는 중국으로서는 이번 전쟁이 좋은 모의고사 기회라고 할 수 있죠.
뉴욕타임스, 로이터 등 서방 매체가 최근 중국 관영 매체와 군사 간행물 등에 올라온 100여건의 각종 글을 분석해 보니 중국이 가장 큰 골칫거리로 여기는 건 군사 무기가 아니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스타링크가 제공하는 인터넷망으로 무인기 정찰 영상을 공유하면서 원거리에서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 등을 족집게처럼 타격해 치명상을 입혔다는 거죠.
미국 제공 무기 중에서는 러시아군 정밀 타격에 유용하게 쓰인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을 비롯해 전투기와 헬기를 다수 격추한 휴대용 대공미사일 스팅어,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등을 경계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전장 지배한 스타링크 단말기
전쟁 초기 침공하는 쪽은 미사일 등으로 전력, 에너지, 통신 분야 기반시설부터 공격합니다. 기반시설을 운영하는 컴퓨터 통신망 등에 대한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도 진행하죠. 이렇게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통신망이 무너지면 방어하는 쪽은 대응이 어렵습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이런 전략을 썼죠.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통신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타링크 단말기를 지원했습니다. 지금까지 3만대가량의 스타링크 단말기가 공급됐고 독일이 1만대가량을 추가 지원한다고 해요.
우크라이나군은 이번 전쟁에서 우버앱과 비슷한 ‘GIS 아르타’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습니다. 정찰용 드론과 스마트폰, 거리 측정기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적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주변에 산재한 아군 미사일부대와 야포 부대가 집중 공격을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죠. 적을 보면서 공격하니 당연히 성공률이 높습니다.
작년 5월 도하작전에 나선 러시아군을 공격해 70대 이상의 탱크·장갑차를 파괴하고 1000명 이상의 대대급 병력을 전멸시킨 시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 때도 이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죠. 또 흩어져 있는 부대들이 구글 미트나 줌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작전을 협의한다고 해요. 과거와 전혀 다른 이런 수준의 전투를 가능하게 한 건 바로 스타링크의 인터넷 서비스였습니다.
◇“대만 봉쇄 쉽지 않을 것”
스타링크는 고도 550㎞의 지구 저궤도에 1만2000개의 소형 위성을 쏘아 올려 초고속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서비스죠. 이미 3600개가량의 위성이 쏘아 올려져 202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수신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중국은 대만 침공 때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초기 대대적인 미사일 공습과 사이버 공격으로 대만의 통신 인프라를 마비시켜도 대만군이 이 스타링크를 이용해 중국군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는 거죠.
대만해협을 봉쇄해도 미국, 일본 등과 계속 통신망을 유지하면서 안팎에서 합동작전을 벌이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위성 킬러’ 개발 부심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월30일 후난성 창사시에 있는 국방과기대의 한 연구팀이 책장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고출력 극초단파(HPM)’ 발생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어요.
순간적으로 100억 와트의 고출력 마이크로파 에너지를 쏴서 드론, 전투기, 위성 등의 전자장비를 파괴하는 전자폭탄입니다. 크기가 작아 트럭 같은 곳에 싣고 다니면서 쏠 수 있다고 해요.
SCMP에 따르면 중국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가 큰 효과를 내는 걸 보고 스타링크를 파괴할 HMP 전자폭탄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위성 요격 미사일로는 수천개나 되는 스타링크 위성을 모두 파괴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거죠.
미국의 국방 전문가 벤 루이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매체들이 스타링크를 마비시킬 무기를 개발했다는 등 특별하게 언급하는 건 그만큼 스타링크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유사시 대만이 이를 활용하거나 미국이 개입하는 걸 우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팅어와 재블린도 위협
중국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하이마스와 스팅어, 재블린 같은 보병 휴대용 미사일이라고 해요. 스타링크를 통해 탱크, 장갑차, 함정 등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 매체에는 대만이 스팅어 미사일 2000발, 재블린 미사일 1100발가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미국도 대만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유사시 육로를 통한 무기 공급이 어려운 만큼 이런 미사일 비축을 늘리라고 권고한다고 합니다.
군사전문가인 콜린 코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스타링크는 중국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걱정거리”라면서 “민간의 첨단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중국이 쉽게 베낄 수도 없다”고 했어요.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중국군에 새로운 숙제 하나를 던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