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법대 출신…작년 국제전문가 특채 ###
### 재일교포 첫 사무관 "한-일가교 되겠다" ###.

서울지방검찰청 736호 정성복검사실에서 일하는 황종규(26)사무관
은 일본 법대를 졸업한 재일동포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
어에도 능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연봉 8억원을 제의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런 황씨가 「한국 공무원」의 문을 두드린 것은 작년 6월. 94년
11월부터 일하고 있는 일본의 재일교포단체 민단에 있을때 한국외무부
로부터 온 「국제전문가 특별 채용시험」 공문을 받고서였다.

『고국에 살고 있는 한 핏줄의 삶을 배우며 고국을 위해 일해보고
싶었지요. 무엇보다도 재일동포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95년11월 황씨는 이 시험에 합격, 조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년간 재수끝에 에 원서를 넣어 모두 합
격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보다 더욱 날아갈 듯 했습니다.』.

황씨의 학력은 독특하다. 청년시절 유학의 길을 떠났던 할아버지,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5살까지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미
국으로 건너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고교는 한국(영동중, 용산고)에서 마쳤다.

이런 이력때문에 법대 졸업 직후인 94년3월, 2년 후면 연봉
1억엔(한화 약 8억원)이 가능한 두 곳의 국제투자은행으로부터 취업제의
를 받기도 했다. 최고학부 출신에 3개국어가 유창한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

하지만 그는 『그런데선 돈에 소유당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 그리
고 나서 들어간 곳이 민단이었다. 그는 이제 재일동포라는 지위로 어엿
한 한국의 공무원이 됐지만 그의 연봉은 「8억원 가능」에서 「2천만원 남짓」
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작 그를 슬프게 한 것은 일본과 미국, 한국을
오가면서 겪어야 했던 「영원한 이방인」의 신세였다.

『미국에서야 피부색이 다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에서 「조센진」,
「마늘 냄새」로 경원시되는 동포가 한국에 오면 왜 「쪽바리」로 불려야 하
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는 교포를 똑같은 핏줄로 대해주는 자
연스러움이 너무나 아쉽다고 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엉성하고 산만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정
이 많고 따뜻하지만 가끔은 나도 그에 상응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
는 게 그의 한국에 대한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관료로서 한국과 일본을 잇
는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일
본에 귀화하지 않은 「한국인 3세」 황씨의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