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이상 4년째 은퇴...형 회사일 맡으면서 유리회사팀 육성 ##.

유리가공업체인 인천 제일유리 상무 장정기(39)씨는 직함 앞에 '전
직 야구선수'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더 좋아한다. 프로야구를 떠난 지
12년. 골수야구팬들도 그를 잊은 지 오래다. 그래도 "언제나 야구인으
로 기억되고 싶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본인 표현대로 그의 야구인생은 실패작에 가깝다. 인천 창영초등학
교에서 시작된 16년 현역시절 단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인천
고, 인하대, 한전시절 '괜찮은 선수'였지 '최고'는 아니었다. 82년 삼
미 원년멤버로 시작된 4년간의 프로시절도 마찬가지. 82∼85년시즌
1백34경기 출전, 통산타율 2할2푼4리, 홈런 4개 30타점으로 '성적표'
가 시원찮다. 3루수를 맡아 1,7번타자로 78경기에 나온 82년에도 타율
2할3푼4리, 홈런 3개, 27타점의 평범한 기록을 남겼다.

83년 초엔 허리 디스크에 이상이 생겼다. 냉정한 프로세계는 대학
2년 후배 이선웅(현대코치)에게 3루수를 맡겼다. 이 때문에 후반기에
만 24경기 선발출전. 84년엔 그라운드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대타,대
주자로 4경기에 출전, 5타수 무안타. 시즌중 팀이 청보로 넘어간 85년
에도 28경기에 나가 15타수 3안타의 '별볼일 없는' 시즌을 보냈다. 그
리곤 은퇴….

지도자를 꿈꾸며 미국유학을 준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2년여동안
방황하던 그에게 친형 형기씨(제일유리 대표)가 "회사일이라도 도우라"
고 권했다. 88년 초 '미국 갈 때까지만 있자'며 회사일을 맡았다. 그
래도 마음은 야구에 가 있었다. 일에 정을 붙이게 된 것은 88년 말.
전자레인지용 유리를 개발, 대우전자에 납품하는 상담과정에서 야구팬
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이미 업체가 선정됐다"며 만나주지 않던 담당자를 우여곡절끝에 만
났더니 대뜸 "야구선수 장정기 아니냐"고 묻더라는 것. 인하대, 한전
시절의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연매출액 1억5천만원짜리 계약
을 성공시켰다.

"의외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다행히 야구를 좋아하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야구얘기를 꺼내면 얘기가 잘 풀려 덕을 좀 봤
죠.".

이렇게 그는 일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영업, 생산, 인사관리 등 역
할이 많아 발을 빼기도 어렵다.

그러나 야구를 잊을 수 없었다. 몇몇이 모여 재미삼아 하던 직장
야구팀을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야구 후배들을 데려와 영업직에 취직
시킨뒤 일과후와 공휴일에 함께 그라운드에 나섰다. 태평양 투-포수출
신 조영상-박명운, 93년 프로야구 2군리그 타격왕 주경업 등이 그들.
이때부터 제일유리는 '준프로팀'으로 불리며 93년 인천 우수직장리그
우승, 94년 인천시장배 직장인 대회, 95년 태평양기전국직장인대회 우
승 등의 전과를 올렸다. 95년까지 단장 겸 선수로 직접 경기에 나섰다
가 지금은 벤치를 지킨다. "언젠가는 야구계로 돌아갈 겁니다." 그는
회사일을 부담없이 정리할 수 있을 때, 초등학교 꿈나무들을 키우겠다
는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