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이호재의 연기는 30%의 긴장과 70%의 이완으로 이뤄져 있다.

배우들은 대부분 무대 위 긴장이 많은 데 비해 이호재는 긴장이 적다고,
그래서 오히려 긴장이 더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그는 쉽게 연기
하고 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호재라는 이름은 우리 연극 무대에서 '좋은 연기'의 대명사다. 드
라마센터 서울연극학교에서 연극 공부를 시작한 지 36년, 드라마센터 무
대에 등장한 지 34년. 그 세월 속에서 50대 장년이 됐고, 연륜과 함께
기억되는 명연기가 숱하기 때문이다.

그는 순발력이 뛰어난 연기자다. 정확하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대사,
유연한 적응력으로 연극속 주인공들과 만나, 경직되지 않고 부드럽게 관
객에게 전달한다. 그 순발력은 한 무대에서 수많은 어조와 얼굴로 관객
을 휘어잡은 1인극 '약장사'와 '하늘 보고 활쏘기'에서 유감없이 입증됐
다. '슬루스'에서도 전혀 다른 목소리와 연기로 관객을 속였다.

정확하면서도 딱딱하지않은 대사는 이야고, 머큐쇼, 맥베스 같은 셰
익스피어 주인공, '초분' '태' 같은 오태석의 주인공들과 만날 때 위력
을 발휘했다. 분량 많은 대사를 엉키지 않고 폭포수처럼 풀어내는 정확
한 발음, 운을 따라 말의 리듬을 찾아내는 능력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경지다.

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백주년 기념페스티벌의 '오셀로'에서 그는 이
야고역으로 갈채를 받았다. 기대되는 유망주로 발돋움한 연기였다. 전설
적 명연기인 이해랑 선생의 이야고가 딱딱하고 충직한 군인이었던 데 비
해,이호재는 정확하고 부드럽고 유능한 일꾼으로 이야고를 표현했다.

69년 군에서 돌아와서는 유덕형 귀국연출 무대 '생명'에서 황덕삼 역
을 연기해 화려한 찬사를 받았다. 이어 '생일파티' '잉여부부' '슬루스'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쇠뚝이놀이' '초분' '태' '맨발로 공원을'
같은 70년대초 드라마센터 전성기 무대를 누볐다. 그에 대한 감탄과 칭
찬,전무송과 짝 이뤄 만든 전설적 명연기 기록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집중
됐다. 75년부터 80년까지는 국립극단 단원으로 '베케트' '동주앙' '페르
귄트' '함성' '북향묘' '초립동' '손탁호텔'에서 명성을 이어갔다.

그는 80년대를 오태석과 다시 손잡은 1인극 '하늘 보고 활쏘기', 드
라마센터 해외공연 '하멸태자' '태'로 시작했다. 이 시기 이호재는 기복
이 심했다. 이 극단 저 극단 떠돌며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80∼90년대가 모두 침체기는 아니었다. 찬찬히 살펴보면 좋은 무대를 찾
아낼 수 있다. 산울림의 '쥬라기의 사람들' '고도를 기다리며', 실험극
장 '아일랜드' '블러드 너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북촌창우극장
'돼지와 오토바이'같은 작품들에서 여전한 순발력, 정확한 대사, 유연한
연기를 과시했다.

그는 70년대 가난했던 연극환경, 80년대 무대의 양적인 팽창과 뒤숭
숭함을 거치면서 어렵게 무대를 지키며 살아온 배우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이나 가끔씩 하는 TV 프로그램으로 생활을 하지만 연극에 대한 자세
만은 언제나 철저하다. 연습에서 공연까지 빈틈 없이 시간을 지키고, 무
섭게 집중한다. 그 좋아하는 술도 줄이고 열심이다.

이호재는 지금 젊은 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낯 익은 상대역 윤소정과
손잡은 '비오는 날의 축제'(11월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달라
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쉽게 보여 오히려 재미가 없어지는 연
기를 더이상 하지 않는다. 긴장하고 땀 흘리며 관객들에게 더욱 바짝 다
가서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무대에서 우리는 명연기의 전설을
지키려는 '배우 이호재'의 새로운 각오를 읽을 수 있다.
< 구히서 ·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

<> 약력
▲1941년 서울 출생
▲휘문고-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졸업
▲제4회 이해랑연극상,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연기
자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