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최후의 24시간

(2)대통령의 침묵 ##.

대통령과 아침운동을 마친 이광형은 즉시 부속실로 돌아왔다. 웨
이터 전영생이 주방에서 부속실 직원의 아침식사를 쟁반에 담아 이광형
에게 갖다 주었다. 부속실 직원은 대통령보다 먼저 식사를 하고 대통령
보다 먼저 마쳐야 했다. 식사 도중에 대통령으로부터 인터폰을 받게 되
면 부관은 입속에 든 밥을 얼른 손바닥으로 받아 낸 다음 즉시 물로 입
을 헹군 뒤 인터폰을 받곤 했다.

박 대통령 부속실에서는 세 가지 장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장부'는 대통령을 제외한 두 딸과 한 아들의 잡비 씀씀이를 다
룬 것이었다. 1979년 10월에는 27만9천3백88원이 지출되었다. 2층 내실
담당 가정부 미스 원에게 10만원, 신당동의 대통령 사저를 관리하고 있
던 박환영 비서관과 아주머니에게 월급 이외의 보조비로 2만원씩, 선물
인 듯한 동양란 구입비 3만2천원, 지만 생도의 콘텍트 렌즈 구입비 5만
원,세탁비 2만여원 등등이었다.

본관에는 식당이 있었다. 본관 근무자와 대통령 가족이 식사하는 곳
이었다. 저녁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수석비서관 회식, 특별보좌관 회식
도 여기서 했다.이 식당의 식료품 구입비는 1979년 8월에 80만8천765원
이었다.

박 대통령의 개인지출을 기록한 장부에 따르면 그는 1979년에 약 70
만원을 양복, 허리띠, 구두 구입비로 썼다. 10월3일에 구두 세 켤레 11
만2천2백원, 8월5일에 흰색 반바지 두 벌 3만원, 허리띠(반바지용) 2만
원,5월28일에 잠옷 네 벌 2만원….

박 대통령 개인 잡비는 대통령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빼 쓰고 입금
해 두기도 했다. 1979년 초에 9만9천830원이 전년도에서 이월되었다가
10월26일 현재 9만7천330원이 잔고로 남아 있었다.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항상 2층 침실 옆 작은 식당에서 했다. 본관
1층 부속실 옆에있는 주방에서 아침이 준비되면 주방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해 웨이터 전영생은 2층 식당으로 음식을 날랐다. 대통령의 두 딸 근
혜, 근영이 먼저 자리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2층 식당 한쪽 구석에는 전자 오르간과 톱악기, 퉁소도 있었다. 대
통령은 밤에 홀로 퉁소를 불기도 했다. 적막한 청와대 본관에 울려퍼진
퉁소소리는 애끊는 음률이었다고 한다. 1층에는 피아노가 놓인 작은 방
이 하나 있었다. 본관 사람들은 이 방을 '피아노 방'이라고 불렀다. 대
통령은 가끔 피아노방을 찾아가 혼자서 '황성 옛터' 같은 노래를 연주
하기도 했다.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오후6시 이후가 되면 525평의 본관에는 대통
령과 두딸 그리고 숙직 당번인 부속실 직원, 그리고 경호원들만이 남았
다.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한 사람들은 일과후를 '적막강산'이라 표현했
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된 이곳에서 대통령은 못다 본 서류를 열
람하거나 국가의 중대사 그리고 자신의 몫이었던 고독과 대면했다.

1960년대 중반 대통령이 패기만만했을 당시에도 청와대는 항상 도
시속의 쓸쓸한 섬이었다. 대통령은 그래서 수없이 되뇌인 말이 있었다.

"이 자들이 나만 이 깊은 감옥에 처넣고 저희들은 마음대로 뛰어다
니며 사사건건 말썽만 부리니….".

이 고독의 섬에 아침이 찾아오면 대통령은 자신의 썰렁한 내면을
이불 개듯 걷어 접고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정장차림으로 가족들과 아침
식탁을 함께 했다. 청와대의 아침 식탁은 찌개와 멸치 볶음 등 대여섯
가지 밑반찬이 전부였다.대통령의 오른편으로는 조간신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대통령은 늘 그러하듯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섰
다. 이때 근혜양이 선물로 들어 온 족자를 들고 와 아버지께 보여 드렸
다. 대통령은 족자를 펴 벽에 걸어 보더니, "그 사람이 벌써 이렇게 됐
나"면서 흐믓해 하였다. 그 족자는 그로부터 40여년 전 경북 문경에서
박정희가 보통학교 교사로 있을 때 제자였던 사람이 써 보낸 것이었다.

대통령이 2층 식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그 시간에 맞은
편 비서실장실에서는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
의가 열리고 있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열리는 회의였다. 유혁인 정무
제1수석, 고건 정무제2수석, 서석준 경제 제1수석, 오원철 경제제2수석,
최광수 의전수석, 박승규 민정수석,임방현 공보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하
였다.

매주 1회꼴로 대통령에게 친인척 관련 상황보고를 해온 박승규 민
정수석은 비상계엄령이 펴진 부산지역의 민심동향을 조사하고 올라왔었
다. 다음날인 토요일에 대통령을 면담, 민심 동향과 함께 대통령의 친
인척들에 대한 보고를 하기로 돼 있었다.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가 끝나자 김계원 비서실장은 박승규를 따로
불렀다. 박 수석은 이렇게 보고했다.

"부산지역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단 병력이 시민들을 때려 민심
이 반정부적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내일 각하에게 그 사실을 보고
할때 김재규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불화에 대해서도 보고하시오. 특
히 차실장의 월권적 행동에 대해서 보고하시오.".

김 실장은 그 전에도 한번 대통령에게 "차 실장이 정치에서 손을
떼도록 하셔야 되겠습니다"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차
실장이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정치를 잘 알아"라고 했다. 김 실장은
비슷한 건의를 다시 하기가 뭣해서 박 수석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었
다.

김 실장은 박 수석의 그런 보고 후 대통령을 만나 김 부장과 차 실
장의 암투가 심하니 차라리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꾸어 주자는 건의를
할 예정이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이날 아침 8시20분쯤 연희동 집을 떠났다. 차
실장은 두 부관을 데리고 있었는데, 이날 그를 수행한 것은 이석우였다.

이 부관은 아침 8시에 연희동 차 실장 집에 도착, 1층에서 근무중인
경호실 직원으로부터 차 실장의 5연발짜리 리벌버 권총이 든 가죽 손가
방을 넘겨 받았다. 차 실장은 8시40분쯤 청와대 정문 우측 첫번째 4층
건물인 경호실에 도착했다. 그는 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김재규 정보부
장을 전화로 찾아 통화했다. 8시45분 경이었다.

김 부장은 이날 박 대통령이 들르게 돼 있는 KBS 당진송신소 준공
식에 참석하고 싶다면서 대통령과 함께 헬리콥터 1호기에 동승할 뜻을
비쳤다. 김부장은 그런 뜻을 김계원 비서실장에게도 전했으나 결정권은
차실장이 갖고 있었다.

차 실장은 김 부장에게 "지금 시국이 불안하고 대통령께서 서울을
비우시니까 김 부장은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