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장이 막올린 연극 '조선제왕신위'(조선제왕신위· 차성우 작,
윤우영 연출)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에 관한 연극적 가설이다.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집권한 인조는
통치력 면에서 광해군만 못했으며, 이를 끊임없이 비판해온 아들
소현세자와 갈등을 키워가다가 끝내 아들을 살해했다…,' 정사엔 소
현세자가 병으로 죽었다고 되어있으나 현재까지도 인조의 독살설
등이 있는 대목이기에 상당히 그럴싸한 가설이다. 극중 칼을 든 아
버지의 아들 살해 장면은 이 연극이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갈등
의 한 모습이다.

연극은 인조(이호재)가 자신의 제삿날 혼령으로 궁에 다시 나타나
실록을 보며 자신의 재위 시절을 복기하듯 훑어가는 것으로
풀어간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후기지만, 역사와 마음대로
대화해가는 이 연극을 370년전 이야기로만 읽을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권력 찬탈과 방어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옛 일들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있었던 군사 정변들을 솜씨있게 환기시킨다.

인조반정과 인조식 정치 행태의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따져보게
만드는 이 연극은, 현대 한국역사에 관한 성찰의 연극이기도 하다.
스스로 '혁명'이라 선포하며 새로운 세상을 약속한 자(인조)가
청에 굴욕외교를 하는등 통치면에선 자신이 무너뜨린 이전
집권세력(광해군)만도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연극이
드러내는 최대의 아이러니다.

소수의 오도된 정치적 명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갈수 있는가도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의
마지막에서 소현세자의 영혼은 알듯 모를듯한 웃음 지으며 아버지
인조의 손을 잡고 춥고 어두운 영계로 돌아간다. 응어리진
역사와의 화해는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 답을 연극은
열어놓고 있다.

궁궐 미니어처를 도입한 박동우의 무대미술은 권부의 암투를
정치에 관한 알레고리로 읽게만드는데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강태기(소현세자)의 연기는 무척 열성적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통치관에 대한 거부 사이에서 겪는 한 인간갈등과 혼돈은
더 드러나야 했다. 부자 상봉 대목에서 초시계로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같은 무리도 없지 않으나, 정통극에 뿌리를 두면서도
'받아들여질 만큼의 파격'만을 시도하는 연출 태도는 일단
건실하다. 26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02)764-5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