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월드컵 북한 주역들의 그후 ##


축구에 대한 북한의 자존심은 매우 높다. 지금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드물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 자존심의 뿌리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주역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당시 선수들은 엄청난 국민적인 환대를 받았다.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두익과 신영균 오윤경에게는 체육인의
최고영예인 '인민체육인' 칭호가 수여되었고, 경기에 한번이라도
참가한 선수 전원에게 '공훈체육인' 칭호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사상투쟁을 하게 되고, 2~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혁명화의 명분으로 지방으로 추방됐다.

이들의 불행은 1967년 이른바 갑산파 숙청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노동당 부위원장이던 박금철과 비서 김도만이 수정주의로 몰려 숙청됐다.
박금철이 체육부문에 오랫동안 관여했고, 월드컵 팀도 그의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까닭으로 적지 않은 축구인들이 혁명화(탄광이나
농촌에서 노동에 종사)를 떠나게 됐다.

사상투쟁의 원인이 된 것은 준준결승 포르투갈과의 경기였다. 북한은 이
경기서 전반전까지 3:0으로 이기고 있다 후반에 5 골이나 허용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진 경기였다. 후반에 북한팀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에 대한 정밀분석작업이 시작돼 집중 추궁 끝에 경기 전날 선수들이
술집에 가서 외국 여인들과 자리를 함께 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당시 주장이었던 신영규였다.
사상검증으로 그의 출신성분이 황해도 연백의 대지주의 아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생기령요업(도자기)공장으로
추방됐다. 그렇지만 그의 명성을 아는 공장에서는 그에게 공장 축구팀을
맡겼다. 생기령도자기공장은 일제 때부터 유명한 공장이었다. 여기서
그가 이끄는 축구팀이 도 체육대회에서 1등하자 다시 함북체육단
축구감독이 됐고, 77년경에는 평양으로 올라가 청소년축구팀을 이끌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66년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휘슬과 동시에 킥오프된 공을 가로채
그대로 슈팅해 경기시작 23초만에 골을 뽑아냈던 박승진의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그는 월드컵경기에 후보선수로 참가했다가 맹활약을 벌여
일약 유명해진 선수였다. 1970년대 중반 외국에 나가는 길에 북송
재일교포의 편지를 전달해 주다가 간첩방조 혐의로 체포돼 함경남도
요덕군 정치범수용소에서 수년간을 보냈다.

기자가 요덕수용소에 있을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요덕수용소
3작업반에 있는 콘크리트다리 건설장에서였다. 젊은이들이 박승진을
알아보고 그에게 축구무용담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 역시 그때
박승진과 며칠간 같이 작업에 동원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언제부터 축구생활을 했는지 또 외국에 나갔던 소감 등이었다.

그는 수용소안에 있는 특별감방에도 수감됐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죽거나 반병신이 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꿋꿋이 살아나온
그였기에 그 비결이 궁금했는데 눅눅한 감방 안을 다니는 쥐며느리, 지네
등을 잡아먹은 것이 비결이었다. 박승진의 감방이야기는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사람들 사이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죄수들이 한때
월드컵 영웅이었던 박승진의 처지를 동정했다. 그 이후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함경남도 체육단 축구감독에서 다시 압록강축구선수단
감독으로 복귀하는 등 축구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박두익이다. 그도
지방으로 쫓겨 내려갔지만 가장 먼저 현직에 복귀했다. 북한에서 가장
오랫동안 축구팀 감독을 맡았으며 뛰어난 재주로 북한팀을 이끌었다.
지도자로서의 재능도 인정 받았다.

한봉진은 평양시체육단 기술부단장으로, 림충선은 축구준비위원회
행사처장, 양선국은 철도체육부 축구감독, 이찬명은 4.25체육단 축구부
골키퍼 코치로 활약했다. 오윤경 등은 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월드컵
영웅 중 절반정도는 영원히 복권이 되지 않아 추방된 채 축구 인생을
끝내야 했다.

북한 주민들과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북한 축구가 갑자기 쇠퇴하게 된
것은 뛰어난 선수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면서 생긴 공백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66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주장 신영규, 골키퍼 이찬명, 박두익,
박승진, 림중선, 박리섭, 오윤경, 강봉칠, 임성희, 한봉진, 김승일,
하정원, 리동운, 양선국 안세복, 이군학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