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이 25일 점심시간 국립극장 뒷길에서 남산 산책로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쉬고 있다.김 극장장은 “남산은 서울의 4계절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곳 ”이라고 말했다.<br><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대학로 커피 한잔에 옛추억 ##

김명곤(49)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은 작년 1월 국립극장장이 된
이후 시간이 날 때면 극장 뒷길을 통해 남산 산책로를 거니는 것이
취미가 됐다.

"배우 시절에는 대학로가 주무대였는데 이젠 산기슭에서 여가를 보내요.
대학로와 종로를 찾을 시간이 이젠 별로 없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렇게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도 참 좋네요."

남산에 요즘 막 퍼지기 시작한 단풍을 보면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생각이 든단다. 산길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에 오래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국립극장에 오기 전에는 남산을 이렇게 가까이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알고 나니 서울의 4계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에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나무가 무성하고, 초여름엔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을 해요."

남산제비꽃, 한라구절초, 두충나무 등이 자라는 '서울 식물의
보고'에서 단원들이 발성연습하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산책에 맛을 들인 이후로는 주말에도 아내(39), 딸(15),
아들(11)과 함께 분당 집 뒷산을 거닐게 됐다.

대학로에서 56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찻집 ' 학림 (742-2877)'과
마로니에 공원 옆 찻집 모짜르트 (744-7651)를 즐겨 찾는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대학로가 요즘은 너무
화려해져서 낯설다"고 그는 말했다. 요즘은 국립극장 근처가 편해서
단원들과 회식을 할 때는 이태원 순천향병원 옆에 있는 삼겹살집인 '
양반댁 (795-4301)'을 찾는다.

평생 가난한 연극배우로 살아온 그에게는 고급 음식점이 어색하다. 이달
중순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프랑스 '태양극단'의 연출가 아리안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여·62)씨를 대접할 때에도 국립극장 구내
궁중음식점인 ' 지화자 (2269-5834)'에서 1만3000원짜리 진지상을
대접했다. 국빈 대접이지만 "세금을 함부로 쓰지는 못하겠다"며
국립극장 단원에게 주는 20% 할인혜택까지 받았다.

털털한 것만 좋아하고, 술도 동동주나 소주를 주로 마시는 그는 양식은
통 맛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립극장 구내 양식당인 ' 해와달
'은 비교적 입에 맞는단다. 스파게티, 돈까스 등 웬만한 요리를 모두
1만원 이내에 해결할 수 있다.

그는 76년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년동안 교편을 잡았다가
80년대 초부터 프로연극계에 뛰어들었다. 학생때도 연극을 했으니 평생을
문학·예술과 함께 했지만 "남들이 취미로 하는 게 직업이니 나는 참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연습이 없는 주말엔 꼭 다른
공연을 보고, 11시 넘어서 퇴근해도 책에 손을 대는 버릇은
'직업병'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에 본 공연 '심청'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용가 김매자씨와
명창 안숙선씨가 함께 올린 무대였는데, 춤과 소리가 잘 어울려진 독특한
시도였어요."

책은 1950년 황해도 신천에서 발생한 기독교도 학살 사건을 다룬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추천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두
'손님'이 한반도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보게 해 준
책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