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가에 찌그러진 무덤/ 그는 저 찌그러진 집에/ 살던 이의
무덤인가/ 할미꽃 한송이 고개숙였구나.」 춘원 이광수의 시다. 역사란
가해·피해의 대결구도로 꾸려져 내렸는데 할미꽃은 한국인에게 있어
피해편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꽃이다. 손녀 둘을 데리고 살던 할머니는
곱상의 손녀는 부잣집으로, 밉상의 손녀는 가난한 집으로 예웠다. 가까히
사는 곱상의 손녀가 할머니를 모셨는데 구박이 심하고 굶기다시피하여
밉상의 손녀를 찾아가다 고개 마루에서 기진하여 숨진다. 맘씨 고운
밉상의 손녀가 찾아와 보리밭가에 묻어드렸고 이듬해 그 무덤에서
피어났다는것이 할미꽃의 기원 설화요, 춘원은 가난하고 무력한 이 피해
이미지를 보리밭가 찌그러진 무덤에 핀 할미꽃에 투영한 것일 게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늙었다 하여 소외당하고 밤낮으로 고개 숙이고
살다가도 그 고개를 들어 붉은 화심을 하늘에 들이대기도 하는
할미꽃이기도 하다. 곧 할미꽃이 고개를 쳐들면 가뭄의 조짐으로 알았던
것이다. 피해자의 극에 달한 앙심의 반동이요 소박맞고 소외당한데 대한
반항을 그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겉은 백발의 할아버지 같아 백두옹(白頭翁)이요, 허리가 굽어 할미 같아
노고초(老姑草)란 이름을 얻었지만 속은 붉다못해 검붉어져 있어
일편단심 기개가 시퍼런 한사화(寒士花)로 선비들이 흠모하는 꽃이기도
했다. 신라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서 장미인 미녀에 혹하여
국사를 어지럽히고 있는 화왕(花王)인 목단 앞에 베옷에 백발을 이고서
지팡이 짚고 나타난 것이 할미꽃이다. 이렇게 포의한사(布衣寒士)
차림으로 충간(忠諫)하는 할미꽃은 선비다. 중종 때 사화로 낙향한
선비들간에는 들에 나가 할미꽃 캐다가 담 아래 심어 굽히지 않는 그이
뜻을 기려 선비간에 양지초(養志草)로도 불렸던 할미꽃이다.

할미꽃 뿌리를 즙 내어 하수구나 오양간 측간 등지에 뿌려 벌레가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소독약으로 썼고 몸에 나는 종기나 창(瘡))에
바르면 낫는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도 「할미꽃 뿌리를 다져 종기에
바르면 하룻밤 사이에 창(瘡)이 됐다가 20일 만에 완쾌한다」했다. 이
할미꽃 뿌리에서 인체의 몸속 종기인 암 세포만을 골라 없애주고 머리
빠지는 등의 부작용도 없는 항암제를 충남대 연구팀이 발견했다 하니
동서와 고금 의학의 접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