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어느 해, 지중해에 면한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가정을 가진 30대의 여교사와 그 학교 남자 고등학생 사이에
연애사건이 터진 것이다. 주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당사자들은 달리는
열차의 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을 두고 프랑스 전역이
들끓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불륜이라 목청을 높였고,
개방적인 사람들은 목숨을 버린 사랑이니 순수한 열정을 이해하자고
맞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짓궂은 기자가 총리에게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총리는 곤혹스러웠다. 사랑의 열정을 옹호하자니 당대의 도덕을
거슬러야 하고, 평범한 대중의 도덕 관념을 편들자니 운명적 사랑의
순수함에 등을 돌려야 했다. 돌아올 파장을 고려하면, 정치인으로서는 그
어느 쪽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당시의 총리는 파리의 관광명소
퐁피두센터로 더 잘 알려진 조르주 퐁피두였다. 아주 잠시 고민하던 그는
레지스탕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사랑의 시 한 구절을 짧게 읊고는, 추가
질문도 받지 않고 바로 돌아서 들어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것은 회견장의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뒤 퐁피두의 빈자리에다 대고 박수를 쳤다. 어느 쪽이냐의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총리의 재기와 문화적 지성 때문이었다.
뒤에 대통령이 된 퐁피두는 평소 1000편의 시를 암송한다고 자부했다.
지금도 서점에 깔려 있는 '프랑스 명시 모음'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앙드레 말로와 함께 문화대국 프랑스의 이미지를 만든 그는 바로 정치의
언어를 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말로와 퐁피두를 생각하며 문득 우리 정치인들의 언어를 떠올려 본다.

(박철화·문학평론가·중앙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