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은 서구(西歐)의 학문으로 출발했지만 ‘제2의 탄생’을 겪은 뒤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성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와 대우재단, 조선일보사가 개최하는 제4회 석학연속강좌의 첫날인 7일, 인류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모리스 고들리에(Maurice Godelier)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의 강연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2차 강연은 8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게 된다. 그가 말하는 인류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김광억(金光億)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대담을 나눴다.

김광억 =당신은 70년대를 풍미하던 프랑스의 마르크시스트 인류학파의 대표적 학자였지만 90년대 이래 구조주의와 입장을 달리 하고 경제인류학으로부터도 멀어졌다. 그 변화는 학문적 유행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하부구조보다 상부구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인가? 특히 국가권력의 기원이나 남성지배의 발생과 관련된 당신의 해석을 두고 정통 마르크시스트가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고들리에 =2차대전 후 프랑스에서는 구조주의와 마르크시스트 인류학이 주류를 형성했는데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과 혼인을 여성의 교환체계로 봄으로써 이분법적 분류체계 속에서 인간의 사고구조를 찾았다. 그러나 나는 여성을 교환하지 않는 사회들을 간과한 그의 구조주의 모델의 오류를 비판했고, 일반 대중의 물질적 삶의 존재양식을 더 중시했다. 당시 유럽의 젊은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도덕성에 대한 실망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그 대안으로 여겼다. 우리들은 권력과 생산양식의 관계를 중심주제로 삼고 이를 친족과 혼인제도 그리고 성(gender)과 연관되는 사회적 체계 속에서 분석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인간에게 친족체계와 경제를 포함하는 정치와 종교의 통합력이 중요함을 발견하게 됐다.

=인류학자들이 친족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경제·종교적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경제 역시 물질의 생산·교환·소비가 인간의 권력과 상상과 상징의 결정체이기 때문이 아닌가?

고들리에 =인류학자에게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지식의 영역이며 사상과 상상의 출발점이다. 다만 나는 그것만으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혈연·가족·경제 등에서 다양한 입장과 범주를 하나의 사회로 묶는 것은 영토·정치· 권력·종교 등이다.

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모리스 고들리에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의 공개 강연에는 수백명의 청중이 모여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8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선 2차 공개강연‘아이를 만드는 데 한 남자와 한 여자로는 충분하지 않다’가 열린다. <a href=mailto:fortis@chosun.com><font color=#000000>/황정은기자</font><

=그렇지만 분석과 해석에 있어서 구조의 유용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고들리에 =세련되지 못한 마르크시즘에서는 권력과 구조만 중시했다. 그래서 80년대부터 점차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강조하게 되고 마침내 오늘날은 구조는 무시하고 개인·감성·친밀성·주체 등만 강조하는 또 하나의 극단으로 흐르고 있다.

=당신의 근래 저작에는 현실계·상징계·상상계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사실 인류학자는 '그들'(제3자)의 세계를 형성하고 의미체계의 심층을 이루고 있는 상상력과 그 결과를 이해하기 위하여 장기간 '그들'의 일상세계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이 도전을 받고 있다.

고들리에 =요즈음 특히 미국에서 유행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은 상상을 죽여 버렸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파편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가지고 '자기'의 상상력에 도취되어 '그들'의 세계를 발명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기존의 지식체계에 갇혔던 세계를 성찰의 공간으로 끄집어내고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이해를 위한 방법론을 추구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상상계를 현실계로부터 소외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신의 비판은 얼치기 구조주의와 마찬가지로 유치한 수준의 포스트모더니스트를 경고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고들리에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미국에서는 하이퍼 크리티시즘이 유행하여 인류학은 모두 서구의 발명이라느니 하면서 순수 주관주의에 빠져서 '그들'의 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 대신에 '자기'에 대한 담론만 생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근거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제공한 것이 아닌가?

고들리에 =나는 해체가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해체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상황을 탄식한다. 프랑스의 지식계에서는 각자 필요한 부분만을 이용하는데 미국에서는 푸코나 데리다를 끌어와 인류학을 죽이기 위하여 철학에 매달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인류학은 절충주의와 반성이란 이름의 자기도취를 벗어나야 한다. 나는 바루야족들과 함께 살면서 어느 순간에 비로소 그들의 괴상한 몸짓이나 허구적인 신화가 현실계와 구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상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요즈음 사회과학에서는 심층의 상상계 대신에 표층의 순간적인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류학자는 사물과 세계에 깃들어있는 생명력을 찾아내어 남에게 알려주는 이야기꾼이 아닐까. 예를 들어 물건은 상품과 선물로 사용된다. 상품교환과 달리 선물교환은 의미와 관계의 생산행위로서 사회체계의 근본이 된다. 또한 당신의 강조처럼 '성스러운 물건'도 있다.

고들리에 =우리에게는 몰인격적인 거래의 대상으로서의 물건과, 인간관계의 거래로서의 선물 외에 인간이 완전히 그것에 결합되어 있는 성스러운 물건이 있다. 그것은 왕관과 헌법처럼 사회 전체의 공유된 상상으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서 임의로 팔거나 양도할 수 없다. 프랑스든 오지의 부족이든 '신성한' 사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이념과 상상의 표현기제로서 현실세계를 구성한다.

=문제는 '성스러움'이 서구와의 만남, 권력과 자본의 침탈, 그리고 종교와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폭력에 의하여 발전이나 진보의 이름으로 탈맥락화 되고 파괴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폭력에 대하여 인류학은 어떤 윤리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일까? 지구화는 탈경계적 문화의 흐름을 통한 세계 공동체를 이룬다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중심지와 주변부 사이에 또 다른 권력관계를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고들리에 =이전에는 교류가 다중심적으로 다양화를 실현하였다면 오늘날은 그것이 한 두개의 중심부가 경제력과 권력을 독점하여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주변부까지 급격히 동질화한다. 바루야 사회에서 전에는 가톨릭과 루터파로 개종이 되었어도 전통문화는 유지되었으나 최근 미국의 근본주의 종파가 들어와서 모든 토착 신앙체계를 파괴함으로써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들의 전통적인 지식과 윤리체계는 세계적 기준 즉 중심부의 기준과 틀리다는 이유로 대체되기를 요구받는다. 시장과 비즈니스의 개념이 유입되었고 이제 추장의 손자가 부족의 성스러운 물건을 유럽의 시장에 상품으로 팔아넘기고 점잖던 사람들이 자본의 힘에 팔려 백인사회의 저임금 임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됐다.

모리스 고들리에

=지구화는 필연적인 모순관계를 가지고 있고 중심부와 주변부에 따라 전망과 경험에서 괴리를 보인다. 물론 그것은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러한 자각은 지역주의의 발로라고 매도되기 쉽다. 인류학은 기술과 자본의 힘이 세계를 재편하는 방식과 그 속에서 어떤 새로운 문화의 변질과 통합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고들리에 =지구화 맥락에서 박물관을 문화의 통합적 이해 장소로 만드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서구에서 박물관은 비서구의 물건들을 진화론의 틀 속에 각각 위치시켜서 '서구'를 발명하고 동시에 다른 세계를 '진보'의 범주에서 배제시키는 탈서구화를 실천하였다. 유럽공동체에서는 박물관을 예술품의 미학적 감상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공통적 지식의 생산 공간으로 만들고 또한 지식 공유의 탈경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총체적인 이해를 통한 삶의 방식을 배우는 기제로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점에서 박물관은 인류학적 지식과 시각을 중심으로 재조직되고 있다.


김광억 =권력과 자본의 무한한 획득 경쟁이 삶의 이유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시도하는 인류학은 그 지식의 생산양식과 주제의 구성에 있어서 다른 실용적인 학문분과에 비하여 가치를 왜곡당하기 쉽다. 인류학은 어떤 방식으로 현실 참여를 해야 할까?

고들리에 =인류학은 다양한 수준의 사회를 연구함으로써 차이 뿐 만 아니라 공통성을 깨우쳐주며 삶의 조건에 따른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이나 종족은 재생산되며 지구화는 지역과 민족 간에 상호 의존도와 함께 갈등과 대립도 증가시킨다. 9.11테러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은 문화적 이해와 소통을 위하여 인류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인식하게 만들었다. 미래의 세계는 인류학에게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

=그것은 인류학자가 자신의 주관적 상상에 침잠하지 않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세계에 대한 심층적이고 총체적인 연구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인류학은 제삼의 탄생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정리=김광억 서울대 교수)

(특별후원 서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