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군부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Pinochet) 전 대통령이 과거 폭정(暴政)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자신이 애국으로 일관한 ‘천사(angel)’였다고 주장, 피해자 가족 등으로부터 격한 분노를 사고 있다.

피노체트는 88회 생일을 하루 앞둔 25일 미국 마이애미 소재 스페인어 TV방송 ‘카날(채널) 22 WDL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집권기간(1973∼90년) 중 살해·실종된 3000여명의 정적(政敵)·반정부 인사 및 그 가족에게 사과할 뜻이 없느냐는 질문에 “무엇을 사과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행동한 천사였다”며 “어느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1986년 나를 살해하려 했던 공산주의자 무리들이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피노체트는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선량한 사람으로, 누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결코 없다”며 “독재자들은 말로가 비참한 법인데, 나는 집에서 평화롭게 말년을 보내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내 덕분에 칠레가 이만큼 발전하지 않았느냐”며 “또다시 그때가 오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가인 로레나 피사로(Pizaro)는 “피노체트는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였다”고 성토했고, 피노체트를 기소했던 검사 출신의 에두아르도 콘트레라스(Contreras) 변호사는 “그가 반드시 단죄받아야 할 인물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칠레 민간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피노체트 집권 기간 중 정치적 이유로 살해·실종된 사람은 모두 3197명이며, 수천명이 고문 당하거나 해외로 강제 추방됐다.

피노체트는 살인·고문·납치 등 200여건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치매 증상 등으로 인해 재판을 받기에 부적합한 상태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