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시전문 문예계간지 ‘시(詩)로 여는 세상’(발행인 이명수)은 예술의 순수성 옹호를 표방하면서 일제하 서정시 운동에 앞장섰던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1904~1938)의 육필 유고시를 비롯한 유품 및 유고시 일체를 다음주 공개할 예정이다.

‘시로 여는 세상’은 올해 박용철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유족인 장남 박종달씨가 부친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료에 대한 검증을 마쳤고, 이 잡지의 봄호에 ‘작은 거인의 발자취―박용철 사후 66년 만에 빛을 보다’라는 제목의 평문을 실었다.

김영랑이 박용철에게 보낸 친필 편지는 김영랑의 산문시로 해석되고 있으며, 자료 중에는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기림이 박용철에게 보낸 사신(私信)도 포함돼 있다. 박용철이 누이 봉자, 아내 임정희에게 보냈던 친필 편지들도 이번에 공개됐다. 새로 소개되는 작품에는 창작시 ‘고향’의 개작과정과 T S 엘리엇의 ‘프루프록의 연가’를 비롯한 베를렌, W 워즈워스, W 오언 등의 번역, 그리고 어휘집 노트 등이 있다.

‘고향은 찾어 무얼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데(허물어지고)/ 저녁 가마귀 가을 품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옛자리 바뀌었을라./…’(전집에 수록된 ‘고향’ 원형의 첫 부분).

시작(詩作)용 단어장처럼 보이는 노트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한글편에는 ‘여들없다(바달머리없다)’ ‘나우댄다(헤아려본다)’ ‘소를 깬다(소를 잡아먹는다)’ 같은 말들이, 그리고 한자편에는 ‘천론(天論)-유우석(劉愚錫)’ ‘상청사(上淸辭)-소동파(蘇東坡)’ 같은 메모가 들어 있다.

누이동생에게 쓴 편지는 ‘어제 쓰고 오늘 또 쓴다 봉애야 오늘 염주동 묘사에를 갔다 오니 네 편지와 사진이 와 잇드라’로 시작되는데, 부친의 처사가 부당함을 하소연한 동생을 타이르는 내용이다.

김영랑이 박용철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랑이 이때부터 산문시 형식을 시도하면서 개인용 원고지를 썼다는 사실과 함께, 편지 말미에 ‘내 원고지 너무 조치’라고 농담을 던지는 대목까지 표현돼 있다.

‘…꽃은 뽀시시 입을 버리려다(벌리려다) 좀 쉬엿슬(쉬었을) 듯, 풀입은 늘찐(늘씬하게) 한 치나 더 자라는 것을 좀 머뭇하고, 세상을 매만즈시는(매만지시는) 이, 잠깐 그 손을 노으셧슬 이 고요한 밤의 어느 삽시, 하마 어듸서 큰 쉬임의 편안한 깃븜(기쁨)이 빛나지나 안을까요…’.

김용직은 “박용철의 맡은 바 역할을 보건대 한마디로 그는 한국 문단의 튼튼한 대들보였고 작은 거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유족들이 처음 공개하는 자료는 시작품 80여편, 평론 6점, 산문(서간문 포함) 20여편, 창작 및 교과목 노트 12권 등 방대한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