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계의 앞날은 우리 손 안에ㅡ.” 20대 미혼의 ‘여류 5인방’이 펄펄 날고 있다. 이경민(26·사이버오로 콘텐츠팀) 홍승희(25·바둑TV PD) 하민숙(24·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손유진(24·바둑세계 기자) 정연주(23·타이젬 콘텐츠팀)씨. 97학번인 이경민 씨를 필두로 내년 봄 졸업을 앞둔 정연주 씨까지, 전원이 명지대 바둑학과를 1년 터울로 입학한 동문들이기도 하다.

바둑계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이들이 동시에 ‘뜨는’ 날엔 이곳 저곳서 감탄사가 터진다. 일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웬만한 남자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선 새초롬한 표정으로 경쟁을 펼치다가도, 일이 끝난 후 함께 맥주 잔 앞에 둘러앉으면 마치 가족 생일 파티라도 여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뀐다. 바둑계 요소요소에서 ‘작지만 강한’ 파워를 터뜨리고 있는 이 젊은 ‘처녀 사단’을 향한 바둑계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아졌다.

왜 하필 바둑일까. 5명 모두 ‘어릴 때부터의 인연’ 때문이다. 아마 4단 실력의 홍승희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류 국수전 꿈나무조서 우승한 후 중2 때까지 프로를 지망했을 정도의 강자 출신. 3단 실력인 정연주씨는 “수원의 어느 바둑교실서 승희 언니, 현재 여류 프로 2관왕으로 군림 중인 조혜연(19) 五단 등 틈에 끼어 함께 공부했었다”고 회상한다.

바둑에 대한 사랑은 이들에게 업무 효율을 극대화해 주는 원동력이다. 경력 5년차로 5명 중 최고참인 이경민씨는 “유명한 프로 기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너무 즐겁다. 앞으로 기사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바둑계가 좀더 발전하려면 지나치게 보수적인 분위기를 탈피해야 할 것”(하민숙 씨)이란 정곡을 찌르는 진단도 나온다.

물론 이들은 때로 적(敵)이 돼서 마주치기도 한다. 손유진씨의 다음 한마디에 그 기묘한 관계가 읽힌다. “(이)경민 언니가 찍은 현장 뉴스 사진이 항상 내 것보다 멋지게 나와 속이 많이 상했었다. 이젠 무조건 그 뒤에 가서 선다. 그 후 (정)연주가 입사해 같은 일을 하길래 몇 가지 요령을 알려줬는데, 벌써 나보다 나은 것 같아 또 속이 상하는 중이다.”

바둑 전공 여성들의 숫자와 파워는 앞으로 갈수록 더 강해지리란 게 바둑계의 전망이다. 여성 특유의 감각을 요구하는 업무 분야가 계속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 그런 전망을 뒷바침하듯 이들 5명이 제시한 ‘10년 후의 자화상’도 뻑적지근(?)하다. “여전히 열성으로 일하는 기혼 커리어 우먼”(이경민), “바둑TV 제작팀장, 아니면 바둑문화사업 부장”(홍승희),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정받는 직업인”(하민숙), “바둑 서적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을 듯”(손유진), “바둑학원의 엄마 같은 원장님 정도 아닐까요?”(정연주). 그 10년 사이 바둑계는 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있을까.

(이홍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