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입원한 아이(사진 왼쪽). 입원 3일 만에야 처음 병동을 나선 아이가 어머니와 산책을 하며“이제 상처를 잊고 싶다”고 했다.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계속 꾹꾹 억누르고 있다.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2004년 12월 경남 밀양에서 수십 명의 고교생에게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당한 여중생 사건이 터진 지 한 달. 아이의 일기장에는 그때 일을 이겨내려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제 앞에서는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혼자서 얼마나 맘고생을 했을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6일 피해 여중생의 어머니는 검은 비닐봉지에 초콜릿 등을 가득 담아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다. 자식이 지난 3일부터 입원해 있는 병원이다. 싫다는 아이에게 병원측이 일부러 입원을 권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담당의사가 꼽은 아이의 병명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주요 우울증’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식이장애’ 등 5가지.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였다.

의사는 “아이가 자살 충동이 강한 데다 밖에 나가면 불안해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통원 치료를 하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의사의 허락으로 병동을 벗어나 엄마와 함께 병원 정원을 거닌 것도 입원 사흘 만에다.

아이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사건 당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후 가해 남학생들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41명의 남학생을 세워놓고 이름을 말하면 손가락으로 누군지 가리키라고 했어요.” 남자경찰관이 수치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질문하는 것은 약과였다. 한 명 한 명을 마주하면서 “넣었냐, 안 넣었냐”를 묻기도 했다.

검찰수사도 다를 바가 없었다고 했다. 경찰수사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아이는 3일 동안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옆에서 조사를 지켜본 어머니도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를 하면 4~5시간씩 걸렸어요. 지켜보는 나도 힘든데 말하는 애는 오죽했겠어요.”

아이는 “범죄자에게 묻듯이 꼬치꼬치 캐묻고, 오히려 가해자들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고 했다. 피곤해서 건성으로 대답하자 “동생과 짜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심지어 “다른 애들은 안 당했는데 왜 너만 당했다고 생각하니?” “(다른 일 때문에 밀양에 간 적이 있다고 하자) 나 같으면 한 번 당한 이후로는 밀양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 어떻게 또 갔어?”라는 질문도 있었다고 했다. 검찰은 “검사는 단지 피해자의 발언만을 받아적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확인 질문을 할 수 있다”며 “그런 발언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기록이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일이 항의하기엔 너무 지쳤어요. 그게 아니라도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딸을 지켜보는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냐”고 묻는 어머니의 눈에 억장이 무너지던 지난 시간들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처음에는 신고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는데, 이런 일로 고통받을 다른 애들을 생각했죠. 여기서 꺾이면 모두 지는 거잖아요.” 가해자들로부터 “합의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대신 아이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강지원(姜智遠) 변호사 등 무료 변호인단과 한국성폭력상담소(02-338-5801)다. 이들을 통해서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아이는 올해 소원으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다 머릿속에서 지워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병동으로 돌아가던 아이는 “한꺼번에 잊혀질 순 없겠지만, 천천히 다 잊을 거예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