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서강대 겸임교수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말했다.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와 동류로 취급하는 것을 참을 수 없으며, 북한 스스로도 감히 공산주의를 표방한다는 사실을 좌시할 수 없다."(프랑스 공산당기관지 '뤼마니테', 2000년 5월 17일)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사회주의 기본원리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탈 사회주의' 국가다. 그렇다 보니 스탈린주의의 변형, 루마니아 술탄체제와 유사, 유교공산주의, 유격대 국가 등 북한 체제의 특질을 설명하려는 다양한 설(說)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설은 '예외국가' 북한을 이해하는 데 나름의 잣대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필자는 1945년 이전의 일본 천황제만큼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할 체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천황(天皇)'과 '수령(首領)'이라는 신격화된 인간의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존재는 국가신도(國家神道)와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적 기반 위에 일사불란한 명령·동원 체제라는 현실정치의 물적 기반이 강고히 결합된 전체주의 체제의 수장이다. 따라서 정교(政敎) 분리가 이루어지던 봉건시대 군주의 지위와 권능을 훨씬 능가하는 절대적 존재다. 국가를 이끌기 위해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인민은 그들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바쳐야 한다. 군국주의(軍國主義) 일본의 최고규범이었던 '교육칙어(敎育勅語)'는 "그대들 신민(臣民)은 전시(戰時)에는 충의(忠義)의 마음으로 분발하여 용감하게 천황을 위해 싸우고, 그렇게 함으로써 천지와 함께 끝없이 천황의 영광을 거들어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어릴 적부터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을 본받도록 교육받고'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가미카제 특공대로 나서는 것을 영광으로 삼았다.

이 '교육칙어'에 해당되는 것이 1974년 김정일이 만들어 헌법 위에 군림시킨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해야 한다."(제1조)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는 여기에 우리 조국의 끝없는 영예와 우리 인민의 영원한 행복이 있다."(제2조)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을 제일 생명으로 여기고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칠 줄 알아야 한다."(제8조)

유사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代)를 이어 충성하는 세습제도 역시 동일하다. 군을 핵심기반으로 한 통치 스타일도 일치한다. 천황은 육·해군의 대원수였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다. 천황제에 군국주의가 있었다면, 수령제에는 선군(先軍)정치가 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도 일치한다. 공화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체제 모두 근대시민과 국민이 없다. 수령님께 충성스러운 조선인민은 천황폐하께 충성스러운 황국신민과 차이가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절에 나이든 북한 주민들이 "일제시대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며 경제적 고통을 호소했다는 사실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은 차마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일제 식민통치의 거대한 유산이 한반도 북부 '주체(主體)의 나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독립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 미완(未完)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지난 세기 두 개의 전체주의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짓눌렀다. 다행히 첫 번째 것은 35년 만에 극복했으나, 두 번째 것은 반세기가 넘도록 현재진행형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체제건 자기 보존 본성이 있고 변화에 대한 경직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수령제의 경우 경직성이 매우 높다. 그런 경직된 체제하에서는 중국식 개혁 개방이 불가능하다. 오직 '창조적 파괴'만이 통할 뿐이다. 그런데 돈만 적당히 집어주면 잘 될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깊어가는 가을, 민족의 시름 또한 깊어만 간다.

(申 志 鎬 · 자유주의연대 대표· 서강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