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평창동. 뒤는 북한산, 앞은 북악산에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그런데 북악터널로 향하는 큰 길(북악로)을 사이에 두고, 두 곳에서 대형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70~80년대 서울의 명물 가운데 하나던 평창동의 두 호텔, '올림피아호텔 서울'과 '북악파크 관광호텔'이 있던 자리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모두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 가고 있다.
12층짜리 본관에 야외수영장과 골프연습장·예식장·컨벤션센터를 두루 갖췄던 올림피아호텔 서울. 270개 객실을 가진 본관은 리모델링을 위해 하얀 가림막이 둘러쳐졌고, 나머지 시설들은 모두 파헤쳐졌다. 1964년 '만하장'으로 문을 연 뒤, 2000년 이후에도 남북장관급회담과 청와대워크숍 등 굵직한 행사를 유치해 명성을 유지했던 곳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호텔 소유 땅에 아파트·빌라가 들어서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호텔이) 과도한 투자로 수백억원대 자금난을 겪는다더라’는 얘기가 돌았다. 한때 외국계 호텔체인인 ‘포포인츠 쉐라톤’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도 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작년 12월25일 끝내 문을 닫았다. 지난 4월 롯데건설이 아파트 공사를 시작했다. 70~120평형인 호화판 아파트 100여 가구를 들일 예정이다.
5층 건물에 108개 객실을 가졌던 길 건너 북악파크호텔(1975년 개관)은 이미 2003년 중반에 완전히 헐렸다. 올림피아호텔과 마찬가지로 사업 확장 과정에서 재정이 악화됐고, 회생에 실패했다고 한다. 아담하지만 중후한 상아빛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난 6월부터 ‘고품격’을 지향한 실버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풍림산업이 시공하고 경희의료원이 운영할 ‘수페 갤러리’다. 2008년 2월 28~54평형 아파트 203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두 호텔은 빼어난 경관과 호젓함을 무기로 70~8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 주말이면 낮에는 결혼식장과 야외식당에 온 손님들로, 밤이면 '물 좋은' 호텔 나이트클럽으로 출동한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호텔 마당에 쉬러 오는 나들이객도 적지 않았다. 그 덕에 세검정쪽으로 늘어선 식당과 가게들도 제법 재미를 봤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두 호텔은 기울었다. 규모와 시설에서 압도적인 특급호텔이 시내 곳곳에 개관했고, 내부순환로의 정릉터널과 홍지문터널 등이 인근에 개통되면서 호젓함도 상당히 상실된 탓이다.
그 사이 야외 음식점과 산자락에 들어선 크고 작은 종교시설로 대표되던 평창동 풍경도 커피숍·갤러리가 어우러진 주택가 모습으로 바뀌었다. 상명대 입구부터 북악터널에 이르는 길에 늘어섰던 대형 갈비집들도 10년 사이 대여섯 곳이 문을 닫았다. 올림피아호텔 자리 옆에서 21년째 ‘북악마트’를 운영하는 강영호(42)씨는 “한때 유명하던 ‘북악산 터줏대감’들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