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거철만 되면 소속 정당 옮기기를 밥 먹듯 하는 정치인들을 가리켜 ‘철새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게 매우 못마땅하다. 그저 길만 건너면 새 정당에 몸을 담을 수 있는 정치인들을 철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긴 여정에 올라야 하는 철새들에 비유하는 것은 철새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 선거철마다 이리저리 빌붙어 먹는 정치인들을 ‘진드기 정치인’이라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요사이 여의도 생태계에 또다시 철 맞춰 진드기들이 대거 출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슈인 ‘조류 인플루엔자’에 관련된 철새들의 억울함을 변호하고자 한다. 지난해 12월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천안에서 또다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청둥오리 등 충남 지역을 찾은 철새들의 분변(糞便)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연구결과가 함께 보도되어 철새들을 바라보는 눈들이 곱지 않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발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 분리 기술의 개발 덕택에 1934년 처음으로 확인되었지만 사례로 추정되는 예들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보고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홍콩에서 6명이 사망하자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검증되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퍼뜨리고 있다.

바이러스 관련 질병 역사상 최악의 예로 기록된 스페인 인플루엔자(1차세계대전 중인 1918년 발생해 400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감)에 비유하며 자칫하면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국가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돌아다닌다. 스페인 인플루엔자는 당시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병사들 간의 전염이 용이했고 감염된 병사들이 한꺼번에 자국으로 돌아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바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질병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없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신고와 방역당국의 신속한 대처 덕택에 예전처럼 무지로 인한 불행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감염경로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건만 (스페인 인플루엔자의 경우) 전쟁이 끝난 다음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던 병사들을 생각하며 철 따라 여러 지역으로 비행 이동을 하는 철새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철새들의 분변에서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철새는 물론 텃새들도 수천, 수만 년 동안 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몇 마리씩은 죽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 세계에서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거의 모든 전염성 질환이 그렇듯이 유전적 면역력과 건강상태에 따라 바이러스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새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새들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닭장 속에서 기르고 있는 닭들이 전혀 자연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이미 알 낳는 기계지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다. 알이란 우리 식탁에 올려주기 위해 닭들이 낳아주는 게 아니라 병아리, 즉 자식을 얻기 위해 낳는 것이다. 도대체 자식을 하루에 하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 동물이란 말인가.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오로지 알을 잘 낳도록 인위선택하여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세계 어느 나라 닭장이든 그 안에 있는 닭들은 거의 ‘복제 닭’ 수준이다. 그래서 일단 바이러스가 진입하면 몰살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철새들이 정말 닭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해주는지, 철새들은 바이러스를 지니고도 끄떡 없는데 왜 닭들은 힘없이 죽어나가는지, 그렇다면 닭들이 철새들로부터 무엇을 배워 실천해야 하는지 등을 연구해야 한다. 이런 연구를 하는 학문이 바로 ‘에코역학(eco-epidemiology)’이다. 몰염치한 정치인들에게 비유되는 게 더 억울한지, 아니면 조류 인플루엔자의 원흉으로 몰리는 게 더 억울한지 철새들을 위한 에코과학자들의 변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