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9회 석학연속강좌’가 오는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 이번에 초청된 석학은 정치철학과 문화철학·문화비평의 대가로 손꼽히는 승계호(承啓浩·T K Seung·74) 미국 텍사스대 인문학 석좌교수다.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그의 공개강연은 ▲31일 오후 3~6시 ‘과학과 시의 갈등’ ▲6월 1일 오후 3~6시 ‘마음과 물질의 신비’를 주제로 두 차례 이뤄진다.

평북 정주 출신인 승 교수는 6·25 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했고, 연세대를 거쳐 1954년 도미(渡美), 예일대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단테를 주제로 한 문학비평서를 써서 명성을 높였으며, 이후 플라톤·칸트·니체 등 서양철학의 거장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해 미국 지성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직관과 구성(Intuition and Construction·1993)’의 반향은 컸다. 현재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한국계 철학자는 그와 김재권(브라운대), 정화열(모라비아대), 조가경(뉴욕주립대), 이광세(켄트주립대) 교수 등이 있다.

첫 번째 강연에서 승 교수는 서양철학의 정신을 이루는 두 기둥인 ‘과학’과 ‘시(詩)’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싸움은 고대 그리스철학이 탄생했을 바로 그 때 시작됐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모든 지혜의 샘으로 존중받았으나 그 권위는 새로 등장한 과학(고대의 과학은 자연학 개념)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둘 중에서 어느 쪽이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있느냐는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중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철학이었으며, 시나 과학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보존하고자 했다. 플라톤은 과학과 시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논리학·자연학은 물론 시학·정치학까지 망라한 개별 과학들의 체계였다.

철학과 자연과학을 구별하는 경계선은 데카르트에 가서야 도입됐다. 칸트는 형이상학을 ‘선험적 원리들을 바탕에 둔 과학’으로 건립하려 했다. 하지만 궁극적 진리의 소중함을 보이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현대철학계에서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이제 대부분의 철학적 저술은 시시하고 지루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더 이상 ‘만학(萬學)의 여왕’이 아닌 철학을 현재의 곤경에서 구출하려면 다시 철학에서 ‘과학’과 ‘시’의 역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연은 심신(心身)의 관계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탐구다. 승 교수는 “나의 마음과 나의 뇌는 같은 것이므로, 뇌가 마음에 작용한다든가 그 역이 성립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현대의 심신 이론 중 정신을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보는 ‘환원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세포들이 생물학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관계망을 형성함에 따라 생명과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며, 이 관념을 추적한다면 물질세계의 내재적 생명 원리가 바로 영혼이라는 플라톤의 사상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인 정신과 물질은 결국 동일하다는 독특한 이론이다.

지난 2000년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는 지금까지 김재권 미국 브라운대 석좌교수(철학),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신학), 다니엘 데넷 미국 터프츠대 교수(인지과학), 모리스 고들리에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장(경제인류학), 정재식 미국 보스턴대 석좌교수(종교사회학), 마이클 루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석좌교수(생물학 철학),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필립 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중국역사학)를 초청해 여덟 차례의 강좌를 열었다. (02)6366-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