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사는 불편함의 목록에서 맨 위에 있는 게 언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 자신이 힘없는 아기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같은 기본적인 질문조차 쩔쩔맸다.

10년이 흘러 한국어 몇 마디는 어렵잖게 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언어는 내게 최악의 두통거리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어를 몰라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나처럼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에게 한국인들이 한국말로 대꾸하려 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런 현상은 은행·식당·소매점·길 모퉁이 편의점 직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큼직한 코에 접시 같은 눈동자를 가진 털북숭이 외국인과 딱 마주쳤을 때, 공포가 그들을 엄습한다.

오래전 일본에 살 때, 나는 이런 현상을 ‘외국인 쇼크 증후군’(Gaijin Shock Meltdown), 혹은 GSM이라고 불렀다. 내 앞에 선 일본인의 뇌세포가 나와 마주친 충격 때문에 누전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다. 쇼크의 원인은 이방인과 별안간 근접했다는 놀라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충격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의 입장이 되어 보라. 더 당혹스럽다.

세계화 덕분에 일본 대도시에서 GSM은 과거지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허브’를 자부하는 한국에는 ‘외국인 쇼크 증후군’(Oegugin Shock Meltdown), 일명 OSM이 폭넓고 뿌리깊게 남아 있다.

다른 모든 면에서 멀쩡한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만 마주치면 모국어 구사 능력마저 상실한다. 나는 몇 번이나 내 이마에 “한국어 할 수 있음! 외계인이 아닌 평범한 손님으로 대해 주세요!”라고 한국어 문신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종각역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 이 가게 바깥에는 영어로 “친절하게! 신선하게! 재미있게!”(Friendly! Fresh! Fun!)라고 쓰여 있다. 지난 5년간 나는 거의 매일 이 가게에 들렀지만, 내가 받은 서비스는 별로 친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가게 주인인 노부부는 서너 해 동안 나와 말을 섞지 않고 묵묵히 계산기만 응시했다. 내 자리에선 계산기 숫자가 잘 안 보였기 때문에 나는 목을 뽑아야 했다. 한국어라는 난해한 언어로 간단한 산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있다는 것을 그분들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는 지금까지 수백 번 완벽한 한국어로 “얼마예요?” 하고 여쭸다.

밤에 가게를 보는 점원은 나만 보면 긴장해서 몸을 떨었다. 반년이 지난 뒤에야 그는 다른 손님에겐 다 묻는 간단한 질문(“봉지 드릴까요?”)을 내게도 해줄 결심을 했다. 그 전에는 내가 값을 치른 대여섯 가지 물건을 막막한 얼굴로 몇 초씩 내려다보기만 했다. 기다리다 못한 내가 한국말로 “봉지 하나 주실래요?” 할 때까지 말이다.

이 문제엔 양면이 있다. 첫째, 한국인에겐 한국에 사는 백인은 모두 미국인이고, 유전적으로 영어밖에 못하며, 단기 체류자나 관광객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 이런 고루한 편견에서 탈피할 때가 왔다는 내 생각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수많은 주한 러시아인·유럽인·캐나다인·호주인·뉴질랜드인·미국인이 동의할 것이다.

둘째,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기 시작한 이래 한국 정부와 미디어와 기업은 “세계화하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들볶았다. 좋은 얘기긴 한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해서 불편한 게 아니다. 여기는 한국이고 한국의 공용어는 한국어다. 한국인들이 외국인과 마주쳤을 때 지레 ‘외국인 쇼크 증후군’에 사로잡혀 한국말마저 입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내 생각에 진정한 세계화는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하는 상태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에서 돈 벌고 살기를 선택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상태가 세계화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모든 공적인 의사 소통이 한국어로 이뤄져야 한다. 외국인이 관계된 경우에도 영어는 필요할 때만 쓰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될 테고, 그것이 한국어와 한국 모두를 세계화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과 주한 외국인 모두를 피곤하게 만드는 ‘외국인 쇼크 증후군’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