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조선 건국 연대를 둘러싼 기술 방식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수정됐고, 100부작 드라마 ‘단군’의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단군과 관련된 기념물을 찾기 어려운 반면, 중국에는 단군신화를 테마로 한 대형 공원이 존재하고 있다. ‘단기 4340년’ 개천절(3일)을 앞두고 그곳을 찾아갔다. 높이 18m, 무게 500t의 석조 웅녀상(熊女像)이 세워져 있었다.

◆백의신녀란 이름으로 세워진 웅녀상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왕칭(汪淸) 방향으로 1시간쯤 차를 몰고 가다 백초구(百草溝)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천성호(天星湖)의 서쪽이 나온다. 동서 길이 10.5㎞, 남북 길이 5.4㎞의 탁 트인 저수지 가운데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섬처럼 생긴 용구도(龍龜島)가 있다. 이곳은 만천성(滿天星) 선녀봉(仙女峰) 경구(景區·관광을 목적으로 풍경이 빼어난 곳에 만든 구역)다. 산 꼭대기 근처에 세워놓은 커다란 석상은 멀리 호수 바깥에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정말 크게도 지었네. 저게 누굴까…?" 10년 넘게 옌지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했다는 조선족 K씨는 "공원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직접 와 보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배를 타고 용구도에 내린 뒤 약 1㎞를 올라가 석상에 닿았다. ‘백의신녀(白衣神女)’ 또는 ‘백의선녀’라는 이름이 붙여진 흰색 석상은 가파른 계단 바로 위에 있어서 무척 커 보였다. 높이는 18m로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해수관음상보다도 2m 더 높다. 왼손에는 쑥, 오른손에 마늘을 들고 있는 이 ‘신녀’란 다름아닌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의 어머니 웅녀(熊女)였다. 안내판은 “백의신녀는 조선민족 고대신화에 나오는 시조모”라며 곰이 사람으로 변해 환웅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뒤 “이들의 자손이 고대 조선민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중국 조선민족 부녀(婦女)의 근로·용감·선량·미려(美麗)를 표현하고 있다”고 써 놓았다. 그러나 ‘백의신녀’의 의상은 중국 옷에 가까웠고, 안내판 어디에도 ‘웅녀’나 ‘단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산 전체가 단군신화 공원

산 전체가 ‘단군신화 공원’이나 다름없었다. 등산길 곳곳에는 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모형이 세워졌고, ‘동굴’을 연상케 하는 터널도 있었다. 신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용과 거북이의 모습을 섞어 놓은 용구상(龍龜像)도 눈에 띄었다. 용구상 아래 새긴 팔괘(八卦)와 붉은 지붕이 이중으로 씌워진 정자 두 채가 중국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한민족 건국신화에 나오는 시조의 어머니가 중국 도교의 한 ‘신녀’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한 중국 관광객은 석상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자 “중국 소수민족의 시조”라고 대답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40대 조선족 남성은 “이런 석상이 있다는 건 모르고 왔는데 조선민족 시조모라니 의아하다”고 말했다.

▲ 만천성 선녀봉 경구의 입구. 문 위에 웅녀와 곰·호랑이의 석상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 당국이 석상을 세운 것은 지난 2001년 9월로, 2002년 2월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이후 이곳의 개발은 중단됐다. 취재진이 현장에 갔을 때 종루(鐘樓)를 세우려던 120평 정도의 콘크리트 기단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고, 선착장 근처의 ‘천성호 산장’ 건물은 유리창이 깨진 채 폐가가 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지난 겨울 인근에 스키장을 개장하고 선착장 보수공사를 하는 등 다시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라서? 아니면 다른 속뜻?

선녀봉 경구 관계자는 “조선족 자치주이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조선민족의 시조모 석상을 세운 것이고, 용구도의 지세(地勢)가 좋아 여기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우실하 항공대 교수는 “고조선의 구성원인 ‘웅녀족’이 만주 지역 토착세력이고, 만주는 현재 중국 땅이므로 한민족은 당연히 중화민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억지 논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