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06년 국제 학력평가(PISA·Prog ramme for International Assessment)의 과학 부문에서 11위를 기록한 것을 두고 우리 과학계와 교육계는 '일대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3년마다 만 15세(한국의 경우 고1과 중3)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 조사에서 한국은 57개국 중 2000년에 1위, 2003년에 4위였다. 11위면 아직도 상위권이라고 정부측은 강변하지만 하락 속도는 무섭다. 도대체 학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상황을 맞은 것일까.

2003년 전국과학교사협회 설립에 앞장서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과학교육의 현실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현종오(51) 월계고 교사로부터 문제가 뭔지, 타개책은 있는지를 들었다. 현 교사의 첫 마디는 "올 게 왔다"는 것이었다.

―PISA 과학 분야 평가 순위가 발표된 후, 교육 현장에선 어떤 반응인가.

"'아! 올 게 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2000년(1위), 2003년(4위) 당시 PISA 결과를 내놓고 학생들 과학 성적이 이렇게 좋은데 (한국 교육이) 뭐가 문제냐고 했었다. 지금부터는 그런 얘기 못할 것이다. 이번 일이 우리 과학 교육이 제대로 된 틀을 딛고 나가는데 하나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돼야 한다."

―1등, 4등에서 3년 만에 11등으로 떨어진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한국 과학 교육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인가.

"PISA 2006년 문제는 문항 수도 많고,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더라도 응용력이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2000년과 2003년엔 비교적 단순한 질문이 많았다. 우리는 해방 이후 개념이나 이론을 하나 정해 놓고 학생들에게 그대로 주입하는 암기식 교육만 했으니 응용력 평가에서는 뒤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 학생들은 전기와 관련된 '옴의 법칙'을 물어보면서 '지금 회로에 얼마의 전류와 전압이 흐르고 있고, 회로를 바꾸면 전류가 어떻게 흐르나' 이런 문제를 내면 잘 푼다. 하지만 '집에 있는 멀티탭에 뭔가를 꽂아 쓰고 있는데 다른 뭔가를 또 꽂았더니 전류가 확 끊겼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나'라고 물으면 설명을 못한다. 실험 한 번 안해 보고 고교 졸업한 학생들도 많은 판이니, 간단한 응용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만 가지곤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나 우리 사회의 과학 교육에 대한 철학에 어떤 문제는 없나.

“2002년부터 시작된 제7차 교육 과정은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필수과목이 지정돼 있는 반면, 고2, 3은 과목 선택을 많이 할 수 있게 돼 있다. 수능시험에서도 인문계 학생은 과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체제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어려운 과학 과목을 기피하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과학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이공계 학과도 많다. 과학 과목을 선택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마당에 과학 교육이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작년 PISA 시험을 치른 현 고1 학생들의 경우 성적이 나쁜 원인도 이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고2, 3으로 올라가도 배울 필요가 없는 과학 과목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현재 고등학교는 2년제라고 하는 자조섞인 푸념을 내놓는 교사들도 많다. 고3 1년은 완전히 입시학원으로 보내서 교육을 시키는 게 낫다고 보는 학부모도 많다. 수업시간에 자기가 수능에서 선택할 과목만 공부하기 때문이다.”

―응용력과 관련, 실험교육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에서는 대입 탓이 크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실험을 많이 하는데, 10년 전쯤에 근무하던 어떤 학교에서는 한 학부모가 ‘우리 애 대학 못 가게, 왜 실험 같은 것을 하냐’고 학교로 찾아와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실험 안 하고 과학에 흥미 못 느껴도 대학에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가려면 문제 풀이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게 그 학부모의 논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최근 4~5년 동안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됐다. 여러 학교를 옮기면서도 특별활동 과학반은 계속 운영했는데 최근에는 과학반 활동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거의 사라졌다. 심지어 1년에 1000만원 정도 예산이 잡히는 실험실 교재 구입비용을 연말에 몰아서 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사봤자 실험도 하지 않으니, 연말이 돼서야 급하게 예산을 맞추느라 구입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사정은 어떤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시간도 있고 실험을 원하는 학생도 많지만, 실험실 기자재나 전담 교사가 태부족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과학 실험실 문제는 기자재의 수준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수요가 별로 없으니까 좋은 제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 무게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 저울도 많다는 물리 교사의 얘기가 단적인 예다. 일본에서는 안전을 위해 기울어지면 불이 자동으로 꺼지는 알코올 램프도 있지만, 한국은 그런 제품이 없다. 만들 이유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꽉 막힌 실험 교육이 기자재 수준을 떨어뜨리고, 안 좋은 기자재는 아이들이 실험 교육을 하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식으로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PISA 순위 하락이 과학 교육뿐 아니라 전체 과학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대돼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전체 과학 기술에 대한 홀대도 과학 교육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이 가장 놀랄 때가 언제인지 아나? 자식들이 이공계 학자가 되겠다고 할 때란다. 한이 맺힌 것이다. 외국으로 유학 간 훌륭한 과학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석사, 박사과정도 동남아 등 다른 나라 출신이 없으면 지원자가 없어 유지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어떻게 해야 과학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나.

“교육과정부터 고쳐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현재 교육 과정은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는 과학을 배우지 않아도 되도록 돼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고교 2년 동안 과학 과목을 전혀 수강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정말 큰 문제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면 2009년에 PISA 평가에서 11등보다 더 밑으로 밀릴지도 모른다. 현대는 과학의 수준이 곧 국가의 경쟁력을 뜻하는 시대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현종오씨는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나와 28년째 화학 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다. 과학 교육의 정상화, 재미있는 과학 교육을 위해 오래전부터 교사들의 모임을 많이 만들었다. 다른 교사들과 함께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을 1993년 만들었고, 2003년에는 전국과학교사협회를 구성해 각각 초대 회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는 뜻을 같이하는 교수, 교사들과 함께 ‘차세대 과학교과서 연구개발 위원회’를 세웠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 위원회는 잡지처럼 흥미로우면서 설명도 자세한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 검정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