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이별, MT 같은 추억들을 불러내는 연극 《춘천 거기》,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의 콘서트,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예술가의 초상과 동서양의 고서(古書)를 정밀하게 묘사한 전시《이진용 개인전》. 조선일보 문화부가 월요일 아침 배달하는 '문화 상차림' 이번 주 메뉴입니다.

서양화가 이진용作'내 서랍 속의 자연'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연극

미워할 수 없는 정서의 힘으로 관객을 잡아당기는 《춘천 거기》(김한길 작·연출)는 사랑의 여러 풍경을 품고 있다. 유부남 명수를 사랑하는 선영, 선영을 짝사랑하는 지환, 2년차 연인 영민과 세진, 갓 사랑에 빠진 응덕과 주미, 그리고 이들을 두고 희곡을 쓰는 수진과 그를 짝사랑하는 연출자 병태…. 이 복잡한 사랑의 관계들은 현실과 수진의 희곡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며 추월하고 충돌하고 또 전복된다.

사랑에 대한 무자비한 착상에 관객은 즐겁다. "나랑 자면 돈 굳었다 생각한 적 있어?" 같은 대사엔 폭소를 터뜨리고 "불 나지 말라고 풍경(風磬)에 물고기를 매달았다"는 대사는 긴 여운을 남긴다. 2005년 초연해 20~30대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6월 30일까지 대학로 행복한극장. 월요일에도 공연한다. (02)747-2070

클래식

지난 2006년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가졌던 벨기에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이(Dumay)가 이번엔 협연자로 방한한다. 24일 KBS홀과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잇따라 열리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무대다. 뒤메이는 알렉산더 라흐바리의 지휘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다. 2부에서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을 들려준다. (02)781-2241

23일 예술의전당에서는 서울시향이 올해 교향악축제의 폐막 무대를 장식한다. 세이쿄 김의 지휘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연주하며,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는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협연한다. (02)580-1300

전시

관객이 숨을 삼켰다. 서양화가 이진용(47)씨의 개인전이 열리는 충남 천안 신부동 아라리오 갤러리 입구에 동서양의 고서(古書) 1000여 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양의 서랍장(가로 7.3m, 세로 3.2m, 각 서랍의 깊이 40㎝)이 관객을 맞는다. 책 더미는 흡사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와서 나를 펼쳐보세요. 아름답게 채색된 책등, 우아한 활자와 명료한 제목에 차례로 탄복한 다음 한 권 한 권 펼쳐들고 거기 적힌 비밀을 당신의 내면에 흡수하세요."

그러나 한 발자국 다가서면 이 책 더미는 책 더미가 아니라 책 더미 모양의 서랍장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대가들의 이름이 적힌 각각의 책이 실은 전부 서랍이다. 각각의 서랍 안에는 해당 대가의 작품세계를 연상시키는 소소한 골동품이 투명한 보존액 속에 응고되어 있다.

이 서랍장의 제목은 〈내 서랍 속의 자연〉이다. 작가 이씨는 이 밖에도 게르하르트 리히터, 엔리오 모리코네 등 예술가들의 초상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정밀하게 그린 대형 회화와 설치 작품 등 26점을 선보인다. 그는 "큰 붓으로 쓱쓱 그린 게 아니라, 여자들 입술 바르는 붓보다 조금 더 가는 세필(細筆)로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그렸다"고 했다. 이 개인전을 준비하는 데 그는 꼬박 4년을 투자했는데, 그새 얼마나 나무를 깎고 붓질을 했는지 이 중년 사내의 팔뚝 알통은 쌀겨를 꽉 채워 넣은 옛날 베개처럼 딱딱했다. (041)551-5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