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윤·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

올해로 대학에 몸담은 지 13년이 되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학생들과의 단체 회식에서 쇠고기를 시켜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골 메뉴는 항상 삼겹살.

그나마 국산 삼겹살도 값이 많이 올라서 몇 년 전부터는 수입산 냉동 삼겹살로 갈아탔다. 입학서부터 졸업 때까지, 쇠고기는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삼겹살은 내 운명'이려니 묵묵히 그리고 맛있게 모임마다 먹어준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개정하고 다시 수입을 재개한다고 하니 학생들과 쇠고기 회식을 할, '역사적인 그날'을 기대해 본다.

그동안 국내 쇠고기 수입시장은 2003년까지 미국산이 주도하다가 미국의 광우병 파동 이후 지금은 호주산이 장악하고 있다. 수입시장이 독점에 가깝다 보니 경쟁다운 경쟁이 없었던 셈이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우리 축산 농가의 피해도 예상된다. 하지만 그 같은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우 가격은 수입 물량보다 국내 출하(도축) 물량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 소를 기준으로 할 때 쇠고기 가격은 국내산 출하물량이 1% 증가할 때 0.63% 하락하지만, 수입량이 1% 증가할 때는 0.1% 하락에 그쳤다.

이미 명품의 반열에 오른 한우 고급육의 경우 미국산과는 소비시장 자체가 다르다. 미국산은 오히려 국내산 중·저급 쇠고기와 냉장 삼겹살을 부분적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원산지의 엄격한 표기로 '수입 쇠고기의 국내산 둔갑'을 최소화하고, 중·저급육을 고급화하는 한편, 양돈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협상을 두고 축산농가와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반발이 심하다. 이들의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은 이번에 한국이 30개월 이상 된 소의 고기 수입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부적합한 사료 사용 금지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 같은 조치를 실제 이행하지 않고 연방 관보에 공포만 해도 한국이 수입한다고 한 것을 두고 반대 진영에서는 '굴욕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으로 여러 나라들과 협상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과의 이행 약속을 쉽게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 측의 입장을 감안해 가능한 한 미국의 관련 업계를 설득해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둘째,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이나 검역을 중단할 수 없다는 조건 때문에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에 의거해 도축 검사 과정 등을 통해 광우병 감염 소가 도축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고, 설사 도축된다 하더라도 특정 위험물질을 제거하므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학은 확률 게임이다. 100%의 안전 혹은 0%의 위험은 현실 세계에 없다. 세계 96개국 국민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서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광우병은 이미 19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간 위험한 질병이지만,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경우에도 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안전하다.

또 우리나라도 각종 동물의 국제 이동이나 부적합한 동물성 사료로 인한 오염 가능성이 0%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만약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수입 쇠고기에 대해 0%의 위험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저렴한 값으로 수입 쇠고기를 먹을 것인지, 아니면 위험 제로의 한우만 고집할지는 전적으로 현명한 소비자들이 선택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