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조원짜리 ‘국산 신간’이 등장했다. 책은 100쪽 분량의 영어 논술 서적이다. 평범한 책에 이 같은 천문학적 책값을 매긴 사연은 무얼까?

지난 4월 한 출판사 대표이자 저자인 A씨가 정가 1조원을 붙인 도서를 갖고 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納本)을 요청했다. ‘납본’이란 개인·단체가 출판물을 냈을 때 2권을 발행일로부터 30일 내에 국립중앙도서관에 의무 제출하도록 한 제도로, 도서관법에 규정돼 있다. 납본한 이에게는 책 정가의 50%를 보상금으로 주도록 돼 있다. 출판·독서 문화를 진흥하고 문화보전·해외홍보에도 기여한다는 취지로 196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과 규정대로라면 국립중앙도서관은 A씨에게 1조원(책 정가의 50%인 5000억원2권)을 보상금으로 줘야 한다. 도서관측은 납본을 확인해주는 제출필증 발급을 유보한 채 “도서정가의 산출 근거와 판매 현황을 내용증명으로 보내 달라”고 A씨에게 요청했다. ‘필요한 경우, 납본 보상금 청구인에게 자료를 추가 요청할 수 있다’는 도서관법 시행규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자료를 내지 않고 책도 찾아가지 않아, 도서관측은 문제의 책을 금고 속에 보관하고 있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이런 거액의 납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금은 납본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주도록 돼 있다. A씨는 최근까지 납본이 유보되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도서관측은 “수법을 모방한 제2·제3의 거액 청구가 우려되니 사안이 종결될 때까지 관망해 달라”며 A씨의 출판사 이름과 책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률·출판 전문가들은 “너무 어이없어 일종의 ‘보상금 사냥’으로 보기도 힘들다”면서 “현행 납본제도를 우롱하는 돌발 행동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다른 도서관 관계자는 “1조원짜리 책을 쓴 저자라는 자기만족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현행법은 납본 기한을 어길 경우 도서 정가의 10배를 과태료로 물리게 돼 있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보상금 요구에 대해선 어떤 조치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