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스튜디오 제공 이상훈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의 미용실‘클로저 47’안에 앉아있다. 그는“가게 이름은 모든 스타일의 마무리란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말했다.

이상훈(37)은 직구다. 마운드 위에 선 투수 이상훈의 주무기는 항상 직구였다. 이상훈은 인생도 직구다. 그는 늘 상대 타자 옆구리로 파고드는 몸 쪽 공처럼 움직였다. 빠르고 직선적이었다. 1997년 LG 트윈스의 마무리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다음해 그는 갑자기 일본 프로야구로 떠났다. 2000년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주니치를 일본 센트럴리그 1위에 올려놓고는 또 훌쩍 미국 프로야구로 떠났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일은 없었다. 은퇴할 때도 그랬다. 2004년 33살 한창 나이로 은퇴했다. 그후 이상훈은 음악인이 됐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 섰다. '왓!(what!)'이라는 밴드로 앨범도 3장 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미용실의 사장이 됐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서울 청담동 주택가 골목의 미용실 ‘클로저 47’에서 이상훈을 만났다. 긴 머리와 수염 말고는 패션과 관련이 없을 듯한 그가, ‘빠삐용’이라 불리고 체제에 반항적인 록 음악을 하는 그가 왜 강남 한복판에 ‘토털 뷰티 숍’을 냈을까.

“그 자리가 (임대비가) 싸게 나왔다.” 대답은 역시 직구였다. 선수 시절부터 긴 머리를 유지했으니 헤어 스타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필 청담동에 자리 잡게 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건 없다. 그냥 우연이다. 이 자리에서 가게를 하게 됐다.” 꼬아서 물어봤지만 여전히 그는 직구로 답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제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삼구삼진(三球三振).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쪽이 정상이 아닐까. 공 3개로 삼진을 잡는 게 흔치 않은 것처럼 말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몇 개쯤은 공을 돌려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상훈은 은퇴할 때도 그랬다. 버티기만 해도 수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지만, 시즌 중에 은퇴해버렸다. 그리고는 기타를 잡았고, 지금은 뜬금없이 미용실을 열었다. 그런데 미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상훈은 당연한 듯 “야구를 관둔 지 5년이 됐다. 그 동안 돈을 번 게 없어서 생계를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라며 “한국에서 음악은 돈이 안 된다. TV 나오는 사람들은 드라마, CF, 토크쇼 등을 해서 돈을 벌겠지만, 음악만 하는 사람은 돈을 못 번다”고 말했다. 은퇴한 운동 선수가 밥벌이로 관심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은 흔한 얘기다.

수첩을 덮으며 물었다. “미용도 모르고, 위치도 우연이고, 이상훈씨는 어떤 일을 하나.” 그는 “일할 사람을 뽑고, 믿고, 맡기고, 대표한다”고 대답했다. 수첩을 다시 폈다.

이상훈은 자신을 ‘토탈 뷰티숍 클로저47’의 대표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대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는 “인테리어는 인테리어 전문가가 했고, 헤어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이 한다. 그들은 전문가고, 각자의 영역이 있다”며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보다 잘 알 순 없다. 사람을 고르고 결과를 책임지는 게 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할 일보다 같이 일할 사람을 먼저 골랐다. 그가 선택한 사람이 일본인 헤어 디자이너 '히데'다. 히데는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뛸 때부터 그의 머리를 손질해 줬다고 한다. 이상훈은 "머리는 1년에 2번 정도 밖에 손질하지 않았다. 몇 년 만나다 보니 서로 믿음이 커졌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히데가 데려오거나, 소개를 통해 선택했다.
그는 야구를 예로 들었다. "투수는 공을 던지고, 타자는 공을 치고, 야수는 공을 잡는다. 야구에서도 각자 자기 영역이 있다. 투수는 야수를 믿고 공을 던지지만, 자기가 던진 공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그가 말하는 마운드 위의 투수와 미용실 대표의 자세는 비슷했다.

짐짓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척 했지만, 그는 가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상훈은 가게에 대해 “큰길에서 100 넘게 안쪽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오는 손님이 없다. 이 가게는 철저하게 가게를 알고 오는 손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 연지 3달 남짓 된 가게라서 연예 기획사, 결혼 사진 촬영업체 등 고정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란다.

‘야생마’ 이상훈이 홍보 영업을 한다? 상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다. “마운드(야구), 무대(음악)처럼 사람들이 보는 데서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중요한 건 거기 올라갈 때까지 열심히 하는 거다. 홍보도 그런 일이다.”

무엇이 그를 순치(馴致)했을까 싶었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돈 값’을 못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04년 그가 은퇴할 때가 떠올랐다. 갑작스런 은퇴에 대해 설명도 변명도 않던 그는 그저 “더 이상 연봉에 걸맞은 기량을 보일 수 없다. 팀과 감독에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다. 그는 순치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프로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