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셰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작곡가 살리에리(Salieri)와 모차르트(Mozart)는 음악사상 둘도 없는 앙숙처럼 여겨집니다. 살리에리가 열정이 있으되 재능은 모자란 우리네 범인(凡人)의 대표격이라면, 모차르트는 타고난 능력으로 모든 걸 너무나 쉽게 이뤄내는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지요.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인 〈레퀴엠〉의 창작 과정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독살설(毒殺說)이 결부되면서 살리에리는 역사상 둘도 없는 천재를 숨지게 한, 둘도 없는 못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둘은 한 무대에서 '오페라 맞대결'을 펼친 적도 있습니다. 1786년 오스트리아 의 쇤브룬 궁전입니다. 당시 황제 요제프 2세의 초청을 받은 모차르트는 단막 오페라 《극장 지배인》을 써나갑니다. 같은 무대에서 살리에리도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를 상연했습니다. 첫 맞대결에서는 오히려 살리에리의 판정승으로 끝났다는 것이 후세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두 작품은 이후에도 같은 무대에서 종종 상연됐고, 많은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영화《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역을 맡은 F. 머레이 에이브라함(오른쪽).


모차르트의 작품이 대사와 노래가 섞여있는 독일 징슈필(Singspiel·음악극)이라면, 살리에리는 노래로 된 이탈리아 오페라라는 점이 다를 뿐, 두 작품 모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두 명의 소프라노를 놓고 주역 캐스팅을 고민하는 점이나 공연을 위해 후원자를 찾아나서야 하는 고민도 흡사합니다. 작곡가와 대본 작가 사이에 주도권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고, 공연을 앞두고 극심한 마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도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두 작품은 모두 '오페라에 대한 오페라'인 셈입니다. 이 작품 이후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와 《마술 피리》 같은 걸작을 쏟아냈고, 살리에리는 베토벤·슈베르트의 스승으로 음악사에 또 다른 이름을 남깁니다.

살리에리에게 씌워진 누명은 의외로 그 연원이 깁니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푸슈킨이 이미 1830년대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질투에 의한 독살을 다뤘지요. 물론 결정판은 영화 《아마데우스》입니다. 당시 살리에리 역을 맡았던 F. 머레이 에이브러햄(Abraham)에게도 '모차르트 살인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지요. 영화 《마지막 액션 히어로》에서 꼬마 주인공 대니는 에이브러햄을 발견하자 곧장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저 남자가 바로 모차르트를 죽인 사람이에요"라고 속삭입니다.

올해 10회를 맞은 〈서울 국제 소극장 오페라 축제〉에서 두 작품을 한 무대에 나란히 올렸습니다. 객석에서 두 오페라에 비슷한 크기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으니, 살리에리도 모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었을 것 같습니다. '초대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오페라에서 군살을 뺀 소극장 무대가 올 여름 활발합니다. '작지만 강한' 오페라를 통해 음악극 본연의 매력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국립오페라단 《카르멘》, 8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6-5282

▶가족 오페라 《마술피리》, 8월 9~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