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강화도로 향하는 초지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타고 강화대교 쪽으로 가다 보면 초지진 (草芝鎭)이라는 조선시대 역사 유적지가 나온다. 거기서 700여m 떨어진 도로 바로 옆. '논이구나' 하고 무심코 지나칠 곳에 '매화마름 군락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는 작고 하얀 매화마름 꽃의 사진과 함께 '지름 1㎝, 꽃자루 길이 3~7㎝, 4~5월에 관찰…도시화·농업화로 인한 논·습지의 서식지 파괴와 농약 등 화학물질 과다 사용으로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적혀 있다.

넓이 3015㎡밖에 안 되고 밑이 불룩한 자루 모양의 이 논에는 지난달 추수 때 오간 콤바인 바퀴 자국들 사이로 벼 밑동들이 바싹 말라 있었다. 논 위를 걷자 메뚜기들이 여기저기서 폴짝 뛰며 달아났다. 보기에는 그냥 작은 논일 뿐이지만 4~5월이면 이곳은 온통 하얀 매화마름 꽃밭이 된다. 논 아래서 겨울잠을 잔 씨앗들이 따뜻한 봄볕과 물기를 받으면 갑작스레 눈을 틔우고 자라고 꽃을 피워 논을 뒤덮는 것이다. 꽃이 질 때가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같은 장소에서 매화마름과 벼가 시기를 달리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 논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청년회가 맡아 관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청년회 이준성(40) 회장은 "논을 갈 때나 이앙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풀이긴 하지만 꽃이 하얗게 뒤덮은 모습은 참 예쁘다"고 말했다.

지난 봄 논 위를 덮은 매화마름 꽃. 매화마름 씨앗은 논 아래에서 겨울잠을 잔 뒤 봄에 눈을 틔우고 4~5월에 꽃을 피운 뒤 모내기 철이 되면 진다.

매화마름은 꽃이 물매화와 비슷하고 잎은 붕어마름같이 생겨 갖게 된 이름으로 미나리아재비과의 야생 식물이다. 환경부에 의해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됐다. 국내 서해안 일부 지역과 일본 등지의 늪이나 논 등에 산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지난 10월 13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시민 모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보존 가치가 큰 자연·문화 유산을 사들여 보전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자연유산 제1호'다.

이 단체와 매화마름 군락지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매화마름은 습지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 한때 국내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98년 한 전문가에 의해 강화도에서 발견되면서 보존운동이 시작됐다.

발견 당시 이곳은 강화군의 경지정리사업으로 곧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곳을 보존 대상 후보지로 선정한 뒤 주민들에게 생태적 중요성을 알리고, 군청을 찾아가 경지정리사업 대상에서 빼 줄 것을 요구했다. 2002년 대상 지구에서 빠지자 내셔널트러스트는 토지 소유자 사재구(68·초지리)씨에게서 일부를 기증받고, 나머지 2400여㎡는 시민 성금으로 사들여 시민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매화마름은 오염이나 농약에 약해 이 논에서는 철저한 친환경농법이 시행되고 있다. 주변 논 32만3400여㎡에서 농사를 짓는 30여 농가도 역시 우렁이 등을 이용한 친환경농법을 쓴다. 매화마름 논에서 나오는 한해 평균 1100㎏의 쌀은 '매화마름쌀'이란 상표가 붙여져 80㎏ 한 가마에 40만원이다. 이 판매수익금은 모두 군락지 보존·관리사업에 쓰인다. 주변 논에서 나는 쌀도 한 가마에 23만7000원이다. 가마당 17만6000원인 일반 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2년 10월 '강화매화마름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장인 한국 식물원연구소 박석근 소장을 비롯해 인하대 해양학과 최중기 교수, 사단법인 한국어린이식물연구회 한동욱 소장, 김정택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 회장 등 16명이 참가하고 있다. 일반시민들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현물 후원이나 자원봉사, 회원 가입 등을 통해 매화마름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