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이란 도둑질한 물건이다." 19세기 중반, 사유재산제를 비판하며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이끌었던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roudhon·1809~1865)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쇄공 출신인 프루동은 《소유란 무엇인가》《빈곤의 철학》을 통해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쏟아냄으로써 혁명적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때마침 프랑스의 국제문제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판 1월호는 프루동을 집중분석하는 시리즈를 실었다.

역사학자 에드와르 카스트레통은 프루동이 마르크스, 콩트, 토크빌, 위고 같은 동시대 사상가들에 비해 지식 사회에서 무시당해왔다고 비판한다. 1909년 프루동 탄생 100주년 때, 프랑스 대통령이 프루동 고향인 브장송을 찾아 동상 제막식에 참여하고 뒤르켐 학파 연구자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들어 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하면서 프루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정도로 취급됐다. 카스트레통은 프루동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기능에 대해 회의적인 현재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조세현 부경대 교수는 프루동이 개척한 무정부주의가 20세기 초 한·중·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글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발표했다. 무정부주의는 민족해방운동(한국), 반전(反戰), 일왕제 반대(일본), 배황(排皇:청나라 황제타도), 문화운동(중국) 등으로 발전해나갔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무정부주의도 1917년 러시아 혁명 성공과 볼셰비키 등장과 함께 급격히 쇠락해갔다. 그러나 조 교수는 1930년대 들어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무정부주의자들이 항일을 위해 공동협력전선을 꾸리는 등 국제 협력에 나선 것을 높이 평가한다.